[전북] 전주 한옥마을
10.01.20
전야.
퇴근 1시간 20분 전 남친에게서 문자가 들어온다. "이거 예약을 안해서 안된대. 어쩜좋아."
그리고 얼굴이라도 보려고 우리 동네에 올거면 진작에 출발을 하던지 나더러 30분을 기다리라고? 분명 내가 정각에 칼퇴근한다고 말했는데도? 그리고 대신에 내가 갈게는 뭐야? 누가 오랬냐? 누가 벌주냐?
아 이거 내가 남친을 잘못 고른거 맞지? 짜증이 밀려온다.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화가 풀리지 않는다. 퇴근하기 전까지 30분 만에 급하게 새로 일정을 만들었다. 뭐 일정이랄것도 없지만. 문자를 주고 받느라 20분을 소비했으니까. 가방도 새로 챙겨야겠지.
이렇게 화도 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줘서 ㄳ. 좀처럼 화날 일 없는 평온한 일상에 뭇 돌팔매질 한 번 제대로 하는구나. 혜연이에게 보고를 하니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 심히, 나름,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난 도저히 함양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10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는 겨우 17시간을 보내려고 대전 집에 갔었다. 이제 13일에 집이 더 멀리 경기로 이사를 가버려서 난 갈 데가 없다. 그래도 나는 강하다. 이렇게 전주까지 또 원정을 나오셨다. 오늘도 국도를 운전하며 2번 급커브길에서 죽을 뻔했다. 바퀴가 지 맘대로 안 도는 거였다. 혼자 ㅈㄹ을 떨다가 원상복귀했다. 진작에 알았다. 오늘도 죽을 고비가 다가올 거라는 거, 그리고 모면할 거라는 거. 아. 또 입에서 욕이 나온다. "이 XX 바보 아냐?" 아까부터 10분마다 한 번씩 나오는 걸로 봐서 내가 상당히 번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엠블랙 오예, ooh baby I like it like that.과 함께.
방금 전 유림은 전화하라고 문자 보내지를 않나, 어디냐니까 왜 얼버무리냐고 또 혼나고 말 못알아듣는다고 이상하다고 혼나고. 나도 미치겠다고 나도 왜 네 말만 못알아듣는건지 돌아버리겠다고. 이렇게 우리 사이에 신비감은 사라져간다. 스키장이나 가자고? 나 강습받아야 돼. ㅠㅠ
어제 밤에는 울면서 잠들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댔어. 네가 앞으로 또 얼마나 날 미치고 폴짝 뛰게 만들지 알어. 나 이제 그만할래. 너 보는 거. 너도 내가 이해 안 될테고. 나 역시 너 이해 안 할거야."라고 중얼대다가 눈물이 흘렀다. 추워서 잠도 안 왔다. 미래에 대한 고민 따위는 좀 따뜻해지고 배부르면 들까. 퐁듀와 뜨끈한 브로콜리 수프와 치즈 케익, 연어 초밥, 조갯살 초밥 등이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1분 1초를 추위와 싸우며 소주를 들이켰다. 그렇게 아침 해가 떠오르기 몇 분 전에 추위를 물리치고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출력한 역경의 리더십은 다 읽었다.
|
향숙이에게서 문자가 들어온다. '12시 넘어서 도착이야.' 그러면 죽기 전에 뭔가 아침 요기를 할까? 향숙이가 오기 전에 미술관도 다녀왔다. 입장료 무료. 설문 작성하고 연필도 게트 ㅋ
향숙이는 전주까지 가서 미술관은 안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 혼자 갔다왔다고 하니 그랬냐고. ㅎ
|
우선 한옥마을 어딘가에서 전주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
가짜 이성계 초상화가 걸린 경기전을 갔다. 마침 문화해설사가 나타난 시각에 들어섰다. 참 운도 좋군 ㅋ
어제까지는 화창하던 날씨가 비가 오고 춥고 난리다. ㅜㅜ 사진도 다 어둡게 찍힌다.
경기전을 나서서 길 반대편의 전동성당으로 갔다.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들어가면 되더라. 무사귀환을 빌었다. 참 예쁜 내부. 정말이지 아름답고 신성해 보였다.
뭔가 흔적을 남기고픈 우리가 할 수 있는 체험이라곤 별로 없었다. 셋 이상인지라. 아니 뭐 해 주긴 해 주는데, 그닥 하고 싶은 게 없었달까?
향숙이는 매듭을 체험하고 싶어했지만 하지 못했다. 한약체험인가에 가서 족탕을 한 게 아주 좋았다. ㅎ
그리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부채체험하러 어떤 가게로 들어갔다. 거기서 참 많이 기다린 후 드디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머리띠도 하나 샀지. 주인 아저씨인가는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중국에 가서 여자를 만날거라고 했다.
각자의 미감이 들어간 부채. 향숙이도 아주 재빨리 만들었다. 사실 부채를 체험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다. 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향숙이가 아까 넘어지면서 카메라의 LCD에 금이갔기때문에 저녁으로 위로의 와플을 샀다. 향숙이는 한옥마을을 아주 맘에 들어하면서 또 오겠다고 다짐한다. 한옥마을은 참 고풍스럽다. 도보 바닥에 깔린 돌들 하나하나도 그렇고, 그 길을 지나가는 멋진 커플도 그렇고, 운치있는 곳. 까페들도 아담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