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경기]양평 초은당

사랑스런 터프걸 2015. 4. 21. 12:26

연초에 읽은 <이야기가 있는 집>을 보고 감탄한 집은 화가 서용의 작업실과 선비 권오춘의 집이었다. (집뿐이었겠나, 라이프스타일도 그랬을 거다.) 작업실의 높은 천정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한옥의 담장에 놓인 토우들은 귀여웠다.

'선비 권오춘'을 검색해 봤다. 그러다가 초은당 블로그에 여차저차 발길이 닿았겠지. 2013년 여름부터 그곳을 문화공간으로 개방했다는 즐거운 소식이었다. 결혼식과 인문학 강좌가 있었다는 것을 봤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가도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모처럼 남양주 집에 가는데, 부모님과 초은당에 같이 가면 좋겠다는 계획이 떠올랐다. 몇 개월 동안 마음 어딘가에 담아두고 있었나보다. 몇 가지 이유는 집 근처의 아침고요수목원이랄지 조안면은 우리에겐 익숙함이 컸다는 점,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동시에 내가 꼭 보고싶은 한옥이라는 점. 가는 길에 너무나 좋아하는 강의 풍경을 계속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30km거리라면 깊은 시골에 사는 우리에게는 먼 거리도 아니라서 낙첨.

다행히 이틀 전이라서 예약은 가능한 듯한데, 정말로 예약을 받을지가 의문이었다. 우선 블로그에 최근글이 없어서 문 닫았나싶기도 했다. 또, 개방을 했다고는 해도 선병국 가옥같은 고택처럼 직접 거주할거라는 생각에 조심스러운 마음과, 내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시간이 혹 무례하면 어쩌지? 다른 약속도 미루고 기다리게 만드는 건 아니겠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20분이 흐르자 OK답문이 왔다. 옹홍홍 기쁜 마음으로 물들었다.

 

일요일 3시에는 갈 데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한옥 보러 가자니 남의 집에 가는 거냐는 말씀이었고, 아마 그런 것 같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엄마는 내일 비가 온다 그랬다신다. 일기예보도 확인 안 한 내가 솔직히 바보같았지만 오빠도 함께 가려면 일요일만 가능했다. 하지만 결국 일요일에 오빠없이 셋이 가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많이도 왔다. 그쳐주길 바라는 내 마음에 남양주는 비를 줄여주었지만, 양평까지는 그 기운이 미쳐주지 않았다. 차단기를 넘어 으리으리 언덕 동네를 오르자 끄트머리에 자리한 초은당. 나중에 들으니 초은당이 이 동네에서 가장 처음 자리잡았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단다.

각잡은 대문은 운보의 집 대문처럼 넉넉했다. 대문 앞에 바로 계단이 있는 것은 호미인과 같았다. 계단에는 예쁜 풀들이 심어져 비를 맞아 더 청초해보였다. 대문 앞 계단은 올라가면 마당과 집이 한번에 드러나며 놀라움을 안겨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은근히 단차있는 대지가 부럽기도 했던 것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하려나 했는데 거의 딱맞게 도착했다. 다행히 다른 분들도 있어 우리만 예약한 방해꾼(?)이 되지는 않았다. 따님이 운영하는 걸 알았기에 여자분이 나오셨을 때 딱 알아봤다. 담장길을 둘러볼 수 있게 안내해 주셨다. 그렇게 많이 오는 건 아니었지만 비가와서 후딱 돌아본 게 아쉬워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옥 자체는 지은 지 10년이 넘은 것이지만 담은 2011년도에 꾸민 것. 아빠의 감상은 "성이네 성." 담장 밖으로 내려다보니 축대 위라 담장은 성벽과 같았다. 산성 쌓듯이 보령오석으로 쌓고, 위에는 정말로 토우들이 늘어서 있었다. 계단의 풀들도, 주변 조경도 차차 지금의 모습으로 꾸며진 것이리라.

외할아버지에게 누군가가 오석이 많은 산을 자꾸 사겠다고 졸랐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검은 빛의 오석은 제주의 현무암보다 멋지다.

하나하나 유니크한 벽돌길이 끝나고 정원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맷돌이 세줄로 깔려있다. 우리집은 한 줄이니 여기 산책로 폭이 짐작 갈 것이다. 마당과 담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북한강 경치가 끝내준다. 경치를 방해하는 것이 없다. 집 뒤에서는 조그만 새 소리가 배경음을 자처해 방 안에서도 산 속에 있는 느낌을 주었다. 작게 음악소리가 있었고, 마루에 향내가 퍼졌다.

 

따님인 권대표님이 날씨에 어울리는 황차로 골라 직접 우리고 방법도 알려주셨다. 워낙 장인들의 솜씨를 즐긴다는 선비분임을 알았기에 우리 앞의 다구도 예사롭지 않았다. 예상은? 적중. 옆에서 조곤조곤 '초은'의 뜻과 최기영 대목장의 건축이 실릴 책에 유일한 사가로 등장하게 된다는 얘기, 가야금 연주자나 성악가가 이곳에 오면 한 수 뽑아낸다는 얘기 등을 들려주셨다. 한마디로 기품이 넘치는 탐나는 분이다.

나보다도 엄마 아빠가 더 사진을 찍고, 10억 들었을 걸 하는 내 말에 아빠는 그거보다 훨씬 더 들었을 거라셨다. 나무가 대단하다고.

 

여기 다녀와서 나는 초은당 병을 앓고 있는 듯하다.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우리 전통문화의 품에 있다 나와서인가. 나도 풍류를 알고싶다. 어째 더 '잘' 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건지.검색을 좀 했다. 다음에는 날씨 좋을 때 가서 절하는 향나무와 삼정승같은 금강송들도 보고, 계단 돌에서 꽃무늬도 찾아봐야지. 거북이 모양의 맥반석이 뭔지도 봐야겠다. 솔직히 내부에서 하고 싶은 것은 드넓은 마루에서 굴러다녀보는 건데 말이다. 문양이 다 다르다는 문고리도 살펴보고, 바람이 새지않게 홈을 만들었다는 3중문도 살펴봐야되겠다. 요번에는 내가 일정이 빠듯해서 급 돌아갔지만 느리게 있다 가고 싶다. 우리 다 유익했고, 좋았고, 욕심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보물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