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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900

다시찾는 우리역사

사랑스런 터프걸 2024. 4. 9. 08:31

한영우는 대한민국의 사학자이자, 2019년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2008년까지 문화재청 사적사료연구위원장 겸 사적분과위원을 지냈다. 그의 저서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대표적인 한국사 통사로 대학 교양 교재나 공무원 시험용 수험서로 널리 쓰이고 있다. 

 

17. 이 문명을 중국인들은 동이문명권이라 부르지만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아사달(해가 떠오르는 동방의 땅) 문명권으로 부르기로 한다.

20. 만주 지역에서 일어난 부여와 고구려는 유목민 문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고구려인이 말을 잘 타고 전쟁에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20일. 아사달족은 이렇게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여
동쪽에 있는 큰 동굴에 하느님의 위패와 조각상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 고구려의 동맹이 바로 그것이다.

24. 공자가 만든 유교도 산동지방에 살던 아사달족과 고조선 사람의 도덕성의 감동을 받아 이론화 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이 중국인보다도 더 열심히 유교를 실천한 것은 유교 자체가 본래 한국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 오던 생활 철학이었기 때문이었다.

27. 한국 그림에는 해학이 풍부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인데 그것이 바로 낙천성이다. 그 풍경에 남긴 음양의 생명력을 강조하고 그 속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받고 있는 감동과 신바람의 흥을 함께 표현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만을 그리는 서양의 풍경화와 다르다.

38.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세운 왕족은 말을 잘 타는 북방의 반농 반유목의 기마족이었다. 이들은 뛰어난 기동력을 이용하여 농경민을 삽시간에 정복하고 새로운 고대 국가를 세운 것이다.

39. 빗살무늬토기 적석총 비파용 동검 등은 황화문명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49. 정당이 의회 정치와 연결되지 못하고 관료 정치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정파 간의 경쟁이 정치 보복으로 이어져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이다.

50. 청나라 사진을 맞이하는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68. 아마 민족 시조인 단군도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86. 부여 영고(맞을, 북) 맞이굿

87. (동)예 무천(춤, 하늘)
무속(무당, 풍속)

95. 고구려
농민에게 곡식을 대여해주는 진대(구휼할, 빌릴)법을 실시하여 소농들이 귀족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았다.

124. 고려때 김부식 등이 삼국사기를 편찬하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 이런 책들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사람이 모두 신라 후손이어서 고구려나 백제에 관한 기록은 매우 소홀하게 취급한 것이 아쉽다.

145. 발해(밝은, 바다)

171. 석탑을 만든 것은 한국 뿐이다.

188. 고려시대부터 처음으로 임금의 묘호에 조와 종을 붙이기 시작했는데이는 당나라 제도를 따른 것이다. 유공자는 조라하고 유덕자는 종으로 한다. 그런데 실제로 고려는 태조만 조를 붙이고 나머지 왕들은 모두 종을 붙였다. 세조는 여러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선조는 왜란을 극복한 공으로, 인조는 호란을 극복, 영조 정조 순조는 본래 종을 썼으나 고종이 황제가 된 뒤에 5대조를 황제로 추존하면서 조로 바꾸었다.

196. 전시(섶)과
국가가 직접 소유하고 있는 둔(진칠)전
-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주둔한 군대의 군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설치한 토지

197. 장학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를 많이 만들었다. 예를 들면 국자감 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한 학보, 빈민을 위한 구제 기금으로는 제위보, 팔관회 경비를 위한 팔관보 등이다. 국가의 빈민 구제 정책으로는 제위보 외에도 병자를 치료하는 동서의 대비원이, 있고 약을 제공하는 혜민국, 평시에 식량을 저축했다가 흉년의 빈민에게 대여해주는 의창, 비축 식량으로 물가를 조절하는 상평창 등이 있었다.
이밖에 사원이나 개인이 일반 서민을 구제하기 위한 서민금융으로 장생고를 만들기도

240. 순수한 우리말로는 선비


<다시찾는 우리역사 2>
169. 민국은 백성의 나라를 뜻하는데, 영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고종 때에는 대한제국 건설의 목표를 민국건설에 두었으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것도 민국을 계승한다는 뜻

209. 주관적 흥취를 강조한 진경산수
자연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실경산수로써 객관적 기록화

224. 사람이 곧 하늘이 된다고 보아 이른바 인내천을 주장하고,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처럼 해야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