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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fali Tsabary - the awakened family아이만큼 자라는 부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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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아이와 있는 이 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나는 관심을 받고 있는가?
나는 가치있는 존재인가?
나는 중요한 존재인가?
지금 이 순간 나 자신과 내 아이에게 진실한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부모로서 제 목표는 아이가 자기 본연의 모습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내재된 가치를 확신하고, 자신을 진정성있게 표현하고, 저와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이어가도록 기르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기만 한다면 어떤 직업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든 상관이 없다.
자신의 동료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을 소중히 여겨야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그런 식으로 대하며 자랐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실수를 통해 나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성장을 위한 부모의 다짐
나는 육아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나는 변화의 책임이 자녀가 아닌 순전히 나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나는 나의 분투가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을 인지한다.
나는 난제에 직면할 때마다 이 상황은 나의 어떤 일면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마음 깊이 자문한다.
성취보다는 마음 상태에 초점을 두어 성공의 개념을 다시 정의할 것이다.
아이에게 자기 내면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다.
아이에게는 자신을 단순히 사랑해 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주파수를 맞추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상당히 체계적이고 일관된 접근법을 쓰고, 격한 감정이 몰려와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부모가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신체적 필요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정서적 심리적 필요까지도 애정어린 마음으로 기꺼이 충족시켜주기를 원한다.
자녀가 필요로하는 점을 적합하게 충족해주려면 부모 자신의 내면이 평온해야한다. 또한 자의식이 온전해야 하며, 인지력이 예리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인생의 기쁨과 고통을 바라볼 때 그것을 기회라는 측면에서 성스럽게 볼 수 있는가이다. 만일 우리가 인생을 이러한 관점으로 대하고, 고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자녀에게 몸소 보여준다면 무분별한 행복찾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쳐도 그것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큰 충족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삶의 굴곡 앞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 혹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에 연연하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면 삶의 예측 불가능성과 좀 더 친숙해졌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를 근거로 삶을 판단하지 말고 명암의 순간들로 풍성하게 짜여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물에 중독된 사람이 흔히 그렇듯 특정한 느낌을 좇는 대신, 현재의 기분과 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기대감을 버리고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야 한다.
현재를 수용한다는 것은 수동적이 되거나 상황에 내맡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격한 감정을 배제한다는 의미입니다.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허용선을 그을수도 있어요. 하지만 두려움, 당황, 수치심, 죄책감 같은 격한 감정없이 이 모든 대화가 이루어져야 해요.
불안을 느끼되 그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을 거둔다. 인간은 불안을 느끼면 안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는 일은 부모가 가르쳐주어야 할 신성한 과제다. 매일 해만 뜨고 비가 내리거나 천둥이 치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은 매 순간 손쉽게 변하지만 사실 '현재'에만 치중하며 조용한 정적을 기반으로 흘러간다.
인생의 부침에 현혹되지 않고 모든 현실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고요함에 다가서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이렇게 할 때 인생의 굴곡을 모두 초월한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내버려두면 기분은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기분이 우리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관찰자 역할
어머님의 마음상태가 달랐다면, 마음 중심을 잡고 있었다면 아이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이들도 엄마라는 존재의 힘을 느꼈을테고요. 이러한 힘은 어머님이 편안한 접근법을 쓸 때 전달되거든요. 가령 어머님이 아이들 앞으로 가서 기기를 내려놓고 아이들 눈을 직시하며 요청했다면 아이들은 말을 들었을 거예요.
나는 우리의 목소리, 눈빛, 존재 자체가 마음 중심에 있는 고요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사람들과 깊이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이러한 내면의 힘과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주의를 끌려면 문제를 크게 만들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해주었다.
자신의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자녀에게 집중하며 차분하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자녀는 부모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준다고 느낀다.
자녀를 부모의 감정적인 반응에서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자녀는 굴복하거나 저항하는 방법밖에 없다. 어느쪽이든 자녀는 부모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상당한 심적 에너지를 소진한다. 상상이나 자발적인 놀이에 써야하는 에너지인데 말이다. 부모는 자녀의 정신을 진지하게 보호해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자녀의 진짜 목소리를 존중하고 참자아를 보살펴주어야 한다.
아이가 무엇인가에 얼마나 오랫동안 몰두하는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몸, 마음, 정신에 어느정도 몰두하는가 하는 점이다.
아이들은 커갈수록 부모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부모가 본인이 한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이죠.
솔직히 마이아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연주를 상당히 잘하는 이유는 연습에 대한 강요와 압박이 없어서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마이아의 바람이 강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이아는 완벽해져야 한다거나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없이 애정을 바탕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갈등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왜 나쁜 현상인가. 무엇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싸움과 양보의 방법을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보하면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해결안이 나와도 참아야 하므로 전진하지 못한다. 말다툼과 싸움은 충분하지 못하다는 기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두가지는 누구나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충분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