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taBase

육아 단상 본문

일상/일기

육아 단상

사랑스런 터프걸 2023. 2. 7. 11:25

가끔, 아니 자주.
얘를 보면서 벌써 네돌이라고? 만 4세 넘었다고? 신기하게 바라본다.
분명 내가 이 세상에 오라고 초대했는데도 너무 힘들어하며 키웠다. 귀하게 못 대해준 것 같은데, 내려놓으면 깨니까 아예 안 내려놓고 키웠으니 남편은 그걸 귀하게 키운 거라고 한다.
결혼 6년 만에 낳았다. 그 동안 3번 초기유산했고, 시험관도 시도했었는데 난자채취를 3회 했고, 이식은 1번 했었다. 너무 힘든 1년의 시간이어서 시험관을 쉬고 있을 때 한의원을 다니며 자연임신한 게 얘다. 내 얘기를 글로 적은 게 "한국난임가족연합회"에 있는 글이다.
https://blog.naver.com/agaya606/221741941580

<난임성공수기22>임신, 행복한 지옥이래요!

저는 3회 자연임신이 모두 초기유산 되었고, 시험관 채취3회와 이식1회를 거쳤다가 다시 자연임신으로 출산...

blog.naver.com

육아는 정말 힘들었다. 아빠가 우울증인것 같다고도 했고. 그렇지만 나 스스로는 전혀 몰랐고.
예를들면 얘가 빨리 잠들지 않는데 누가 방문을 열어서 깼다 싶으면 아주 펑펑울며 원망을 했다.
지금도 나같은 게 엄마라니 믿을 수가 없지만 그땐 얘가 죽지는 않을까 걱정, 부담이 심했다. 떨어뜨릴 수도 있고, 먹다가 목이 막힐 수도 있고...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엄마만 걱정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나도 걱정했었으니.
또, 그 땐 얘가 내 자식이 맞나? 나를 하나도 안 닮았는데.
내 자식이라 내 마음대로 하면서도, 외모가 나를 전혀 안 닮아서 내 자식이 아닌 것 같아 마음 둘 곳이 없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되게 해줘서 참 감사했지만 그런 감사함도 임신 중일 때가 더 했지않나.
진심 자식이 자신을 닮은 엄마들이 부러웠다. 그게 어떤 느낌일지 난 알수가 없는걸까보다.
음. 나는 22개월까지 완모를 했다.
유선이 가늘어 유축이 불가한 몸이라 오직 직수 뿐이었다. 오른쪽 젖은 아예 왼쪽의 절반도 안나오는 수준이었고. 젖양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얘는 참 특이하게도 젖병을 싫어했다. 젖병은 완모하려는 사람에게는 금기의 물건이다. 아이가 빨기 쉬워서 젖을 거부해버리기 때문이다. 젖병을 물면 다른 가족도 '밥'을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나만 누렸다. ㅎㅎ;;
이유식을 시작할 때도 30ml나 먹었나.. 걸핏하면 토하고, 떡뻥 하나를 다 먹는 적이 없었다. 너무나 문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병원에서는 대수롭지 않아했다. 그래서 돌 때 8kg, 두 돌 때 10kg... 무슨 학대받는 아이보다 못한 몸무게를 내 아이는 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 괴로워했나. 병원에서는 아이에 맞춰서 말을 한다. 타고난 게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통통한 아이에게는 잘 먹이고 있다 잘하고 있다고 하고. 나한테는 요즘 애들은 너무 뚱뚱해요 이런다. ㅎㅎ
아마도 내 부족한 젖양 탓에 위가 늘어나지 못하고 종일 젖을 물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나를 위로해 준 것은, 더 마른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애처럼 3.3kg로 충분히 태어났는데도 말이다. 모유수유하는 아이이기도 했고, 분유수유하는 애 중에도 마른 애도 있었다.
참고로 지금은 뭐 괜찮다. ^^ 세 돌 때 13kg, 네 돌 지난 지금 16kg로 날씬하게 보기좋게 성장하고 있다. 영검때마다 키는 큰 편이어서 더 안심하는 것.
또 걱정을 했던 건. 돌 때 막 혼자 다 쑤시고 다닐 정도로 걷지 못해서 애를 태운 것.
15개월에서야 내 손을 놓았다.
18개월에는 말이 유창해질 것 같았는데 점차 빠르지 않은 느낌이 들었고.
얘가 잘 한 건 기저귀를 무척 쉽게 뗐다.
원래 밤에 쉬를 안해서 밤기저귀를 두돌 반쯤부터 안했고, 34개월에 뗐다.
난 어찌할 지 몰랐는데 자기가 먼저 변기에 하겠다고 한거다.
그 뒤에도 실수는 무지많이 했지만 다 괜찮았다. 기저귀가 집에 없으니 집이 넓어지고 ^^
두 돌에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언제 데려가라고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기관에 보내는 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한달이 멀다하고 감기에 걸렸다. (내가 데리고 있던 2년 간 아픈 적이 없었음)
어린이집에 다닌 1년 동안 마음을 많이 졸였다 .어린이집 졸업때는 코로나를 졸업선물로 받고..(파라 독감에 걸려서 입원까지 갔던 게 3개월 전인데)
그리고 만3세때 병설유치원에 넣었고, 1년을 수료한 상태인 지금인 것이다.
뭐 워낙 멀미도 심해서 약간 토와의 전쟁이어서 왠만하면 차로 5분 이상은 안 가는 게 모토였다.
점점 크면서 차에서 잠을 안 자고도 잘 노는 시간들이 생기고
그래서 지금은 좀 부담없이 다니고 있다.
되돌아보면 육아는... 100일까지만 고생해, 돌까지만 고생해 등이 있지만... 나도 그렇게 말해준 적이 있지만(그떄가 편한거라는 거 ㅋ 아직 모르겠지) 그래. 잘 걸으면, 놀이터에서 잘 놀게되면. 이제 눈을 뗄 수 있으니까. 그래. 세 돌까지는 좀 힘들거야라고...
이제 4돌. 이제는 다른 차원의 힘듬이다. 흔히들 말하는 정신적 ㅋ
아니 뭐 나 스스로만 잘 다스리면 되니까. 지금도 좋은거다!
바램이 있다면 이젠 병원과 인연 끊었으면.
추가로 남편의 육아에 대해 ㅋ
내 남편은 놀이터에서 아기띠때부터 우리 아파트의 레전드다. 할머니들에겐 싱글대디로 오해받고, 동네엄마들에겐 내가 부러움의 대상 ㅋㅋㅋㅋㅋ 우리 애만 보고도 놀이터에 나가면 그 존재를 아는 엄마들이 많았다. ㅋㅋㅋㅋ
아직도 남편은 그 얘기를 종종 하곤한다. 자기가 그 때 그렇게 열정적으로 육아했던 얘기를. 노인분들이 건네준 야채를 들고 오던. ㅋ 아기띠가 끊어져서 버렸으니.
우리아빠는 육아를 많이 못해서 아쉽다며 우리 애 아기띠를 해준 적이 있다. 남편은 성실하게 아기띠를 활용했으니 후회가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