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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iles섬 본문
Jean Grenier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는 1898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브르타뉴에서 성장했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22년에 철학 교수 자격증을 얻은 뒤 아비뇽, 알제, 나폴리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누벨르뷔프랑세즈(NRF)》 등에 기고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1930년 다시 알제의 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부임한 그르니에는 그곳에서 졸업반 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만났다. 1933년에 그르니에가 발표한 에세이집 『섬』을 읽으며 스무 살의 카뮈는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고, 몇 년 뒤 출간된 자신의 첫 소설 『안과 겉』(1937)을 스승에게 헌정했다. 그르니에는 1936년에 19세기 철학자 쥘 르키에 연구로 국가박사학위를 받았고, 팔 년간의 알제 생활 이후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등지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말년에 소르본 대학교에서 미학을 가르치다가 1971년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을 발표했으며, 현대 미술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다수의 미학 분야 저술들을 남겼다. 그르니에의 사상은 흔히 말하는 철학적 ‘체계’와는 거리가 있고, 실존주의적 경향을 띠고는 있지만 다분히 회의주의적이고 관조적인 철학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장 그르니에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들은 무엇보다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일상적 삶에 대한 서정적 성찰로 확장시킨 산문집들이다. 그 출발은 물론 그르니에가 알제리 시절에 세상에 내놓았고, 1959년에 몇 개 장(章)이 추가된 개정판이 『이방인』(1942)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카뮈의 서문과 함께 출간되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던 『섬』이다. 그 외에도 그르니에는 『어느 개의 죽음』(1957), 『일상적인 삶』(1968), 『카뮈를 추억하며』(1968) 등의 에세이집을 남겼고, 카뮈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알베르 카뮈와의 서한집』(1981)도 그의 사후 출간되었다. 포르티크 상, 프랑스 국가 문학 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 책 속에 담긴 일련의 상징들은 삶의 에피소드, 무대 장치, 오락...따위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남은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인간이 후천적으로 획득한 것들이나 거기서 암시 받게 되는 의미 같은 것은 여기서 말하려는 바가 아니다.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 준다.
그가 무릎 위에 몸을 웅크릴 때도 제가 가진 모든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가며 웅크린다. 행동의 빈틈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도리가 없다.
일체의 노동이란 노예 생활이라고 여기는 존재들이 거기서, 인간이라면 오로지 가장 부유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을 화려한 사랑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남쪽 지방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과 찌꺼기를 고양이에게 먹인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 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어니스트 르낭은 아침마다 히브리어 사전을 열심히 읽곤함으로써 삶의 위안을 얻었다. 나는 연구라는 것에 그 이외의 다른 흥미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다.
사랑은 마음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그때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밀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자기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비밀스러운 삶이 반드시 부자연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 삶은 우리들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는 자기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는 수 없이 감당하게 마련인 미천한 삶을 깨달은 것이다.
위대한 풍경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것이다. 그리스의 사원들이 매우 자그마한 것은 그것이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 빛과 가없는 풍경으로 인하여 정신이 혼미해진 인간들을 위한 대피소로서 지어졌기 때문이다. 햇빛이 가득 내리쬐는 풍경을 보고 사람들은 어찌하여 상쾌한 풍경이라 말하는가? 태양은 세상을 공백 상태로 만들어 놓아 생명 있는 존재는 저 자신의 모습과 - 아무런 기댈 곳도 없이 - 대면하게 된다. 그 밖의 다른 곳에서는 어디나 구름과 안개와 바람과 비가 하늘을 가리고, 일거리니 걱정거리니 하는 따위를 구실로 인간의 썩은 모습을 은폐해 준다.
나의 목적은 시간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너무 젊어서 사람이 육체적으로 아주 약해지면 마음도 따라서 약해져 가지고 별거 다닌 아픈 기억만으로 자살에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끝장은 항상 똑같은 것이면서도 거기에 이르는 우여곡절은 러시아 산맥의 비탈될만큼이나 다양하다.
...아름다움이란 너무나도 빈곤한 귀중품이어서 그것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어디서나 성스러움의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낙인을 찍어 그것을 파괴한다. ... 예술의 절정은 예술을 무로 만드는 일이다.
전진과 추락이 있고 또 무슨 방향이 있는 그것은 여전히 어떤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