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taBase
거꾸로 읽는 한국사 본문
56. 주몽이 세운 고구려가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가 왕건이 세운 고려가 심지어 발해까지 전부다 나라 이름이 고려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63. 4~5 세기 때 이미 나라 이름을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꾸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광개토 태왕 혹은 장수왕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114. 덕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방을 망라하다. 신라
116. 과거 3한 시대의 한자에 대자를 붙여
141.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 제헌국회 개회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 선서에 대한민국 30년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142. 1897~1919 대한제국 일제저항1기
1919~1948 대한민국임시정부 일제저항2기(1919~1931년), 일제저항3기(1931~1945년), 미군정기(1945~1948년)
1948~ 대한민국
고조선 멸망후 기존의 낭랑군 설치가 아니라 고구려의 건국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타국 중심의 시선으로 역사를 배워 왔습니다.
고조선 멸망 이후 한사군이 설치되었고 대한제국 멸망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고 배웠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한일 합병 조약으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조약에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일을 당연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은 한일합병조약 이후 지금의 서울인 한성을 경성으로 개칭하였고 그곳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는 등 식민지배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고종은 1912년에 항일의병장이었던 임병찬에게 밀지를 내려 독립운동을 독려했습니다.
1919년은 고종황제가 죽음을 맞이했던 해입니다. 당시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만세운동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156. 부여가 된 백제
538년에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해 나라 이름을 부여로 바꿉니다. 그 후 성왕의 아들 위덕왕 때 나라 이름은 다시 남부여에서 백제가 되었습니다.
오래전의 나라 이름을 새 나라의 이름으로 사용한 사례는 성왕의 남부여가 최초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의 사례가 있었기에 다음 나라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나라 이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남부현은 우리나라 국호 계승 의식의 출발점이자 부여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임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입니다.
168. 전륜성왕은 백제의 제 26대 성왕으로 그의 아들 대통불(위덕불)은 제 27대 위덕왕으로, 대통불의 막내아들 석가모니(법왕)는 제 29대 법왕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즉, 성왕은 법화경의 계보를 왕실에 적용 접목해 왕실의 신성성을 고양한 것입니다.
189.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가 멸망할 당시 전체 인구를 약 380십만 명으로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영정조 때 인구를 700만으로 추정하는데 그 때 궁녀의 수는 평균. 오백~육백 명 정도였습니다.
254. 고구려 BC107~668 보덕국 670 ~ 683 발해 684 ~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