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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 국토박물관순례 1. 2. 본문
1.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30일. 특히 인류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아 끊임없이 자연을 개조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도 개조해가며 오늘날 우리에 이르렀다
man makes himself.
전기 구석기
700만년 전 Toumai삶의 희망
36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간 비슷한 원숭이)Lucy
230만년 전 Homo habilis(handy human)
200만년 ~ 10만년 Homo erectus직립원인
중기 구석기 15만 ~ 3만년 Neander tal(계곡)
후기 구석기 4만5천년 ~신석기
Homo sapiens 20만년~
96. 신석기인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모든 생명체에는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을 갖고 있었다. 이는 구석기인들과 구별되는 신석기인들의 중요한 특징이고 이것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를 낳아 샤머니즘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다시 토테미즘을 낳았다. 이것을 유물로 가장 잘 말해 주는 것이 동삼동 패총의 조개 가면이다.
98.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아주 거친 원시무문 토기로 시작되어 덧띠 무늬 토기로 발전했다. 덧띠무늬 토기는 그릇을 성형한 다음 단단하게 하기 위하여 표면에 굵은 띠를 서너가닥 덧붙인 아주 세련된 토기다. 이 덧띠무늬토기는 기원전 7천년 전
101.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1500년까지 장구한 세월 동안 형식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빗살무늬라는 단순한 레퍼토리를 한정된 기법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했다는 것은 이들의 삶에 거의 변화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112. 그 기차는 구포를 경유해서 가기 때문에 3시간 17분이나 걸리는데요.
오랜만에 경부선 옛철길을 따라 낙동강 풍경을 보고 싶어서.
224. 만주땅 서쪽을 가로지르는 큰 강의 요하다. 이 요하를 기준으로 대략 요동과 요서로 나뉜다.
231. 하나는
환인에 있는 오녀산성이고, 또 하나는 집안에 있는 적석총입니다.
239. 하나는 평상시 거주하는 평지성이고 또 하나는 전쟁 시 방어용 진지로 마련한 산성입니다. 둘이 한 세트인 셈이지요. 환인에 있는 평지성이 졸본성입니다. 이는 집안으로 천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평지의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242. 고구려는 건국한지 불과 40여 년 만에 이렇게 수도를 옮기게 됐다. 이는 마치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급히 피난하여 금강을 건너가자마자 웅진에 터를 잡았으나 비좁고 토착 세력들의 뿌리가 깊어 약 60년 만에 넓은 터를 가진 사비로 천도 한 예를 연상케 한다. 즉 환인는 선택의 여지없이 터를 잡은 곳이어서 40년간 수도였고 집안은 제대로 된 도읍지로 선택한 곳이기에 420년간 수도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255. 고구려의 건국이 부여에 뿌리를 두었으나 고구려는 고대 국가로 발전하고 부여는 이내 쇠퇴하면서 후대에 생긴 착시 현상으로 고구려 주몽(동명성왕) 설화는 부여 동명왕설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부여의 자취는 만주 곳곳에 남아 있다. 허얼빈과 장춘 사이에는 부여시가 있다. 부여가도도 있고 동명왕동상도 세워져 있어 그곳이 북부여의 도읍지로 생각된다.
268. 집안 산성하 고분군에는 1500기의 적석총이 모여 있다. 집안 전체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은 무려 11,300기에 달한다.
285. 고구려 벽화 고분은 350년 무렵부터 668년 멸망까지 300년간 조성되면서 초기 100년간은 여러칸 무덤의 초상화, 중기 100년간은 두 칸 무덤의 풍속화, 후기 100년간은 한 칸 무덤의 사신도 벽화로 이동하는 양식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의 변화는 무덤의 주체가 초기는 피장자 개인, 중기는 내세의 삶이 영위 되는 공적인 공간, 후기는 영혼의 세계를 구성하는 질서 등으로 변해가는 것을 말해준다.
※연천, 부산, 울산
심양 요령성박물관, 북한식당,
오녀산성, 집안 산성하 고분군에 가보고 싶어졌다.
유홍준이 비록 잘난체했던 과거가 있나보긴 하지만 뭐 꽤 괜찮은 글들을 써낸 것 같다.
2. 백제, 신라, 그리고 비화가야
229. 신라에서 금제품이 장신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중엽 마립간 시기부터다. 그리고 마립간 시기가 끝나는 6세기로 넘어가면 신라의 황금 문화는 퇴조하여 금관을 비롯한 금속공예품이 앞 시기처럼 제작되지 않는다.
233. 마립간 시기에 갑자기 출연한 돌무지 덧널 무덤이라는 독특한 무덤 형식도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에 무수히 산재에 있어 신라인 특히 경주 김씨 왕족들과의이 지역의 친연성을 생각게 하기도 한다.
※ 부여와 경주에 가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