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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900

문화로 읽어낸 우리 고대사

사랑스런 터프걸 2025. 2. 12. 09:26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생각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풍수사상을 신봉하지 않는 서양이 물질적 풍요
여러 사상을 존중하되 그 사상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
들판에 왕릉을 세운 신라인들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년의 왕조를 이끌지 않았나.

어쩌면 처음부터 하늘에서 온 해모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헤모수는 유화의 상상 속에서 창조된 인물,

하늘과 소통하는 도가적 사유요, 둘은 하늘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인간 세상을 질서롭게 끌고 가야 한다는 유가적 사유다.

신라 금관은 생명의 나무를 상징화,

경주의 겨울은 주변 도시보다 3~ 5도 더 춥다.
도시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기 때문이다.
날씨는 주변보다 덥기도 춥기도 하지만 분지 지형으로 외적에 대비하기에 좋은 장점이 있다.

늑대를 토템으로 하는 문화는 남러시아 초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서 동서로 전파되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늑대는 엄격한 서열 사회다. 늑대에게 초원에서 사냥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늑대가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에서 강한 모성을 발견했다.

트루크(돌궐)

진번, 진국, 진한의 진은 모두 단군왕검 사회를 계승한 공동체가 쓰던 명칭이다.

유라시아 초원의 이동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험난하지 않았다.
흑해에서 준마를 타고 계속 달린다고 가정하면 2주 정도면 동해 바다까지 다다를 수 있다.

법흥왕 때에 이르면 불교가 공인되고 왕실은 불교를 통해 민심을 하나로 모으려고 했다.
그렇다면 불교적 세계관이 당시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되고 있었을 것이다.
불교의 금욕적 생활이 요구되었을 것이란 말이다.
사실 법흥왕 부부는 말년에 출가,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음에도 후비를 얻어 아들을 낳으려 하지 않았다.

박혁거세를 중심으로 했던 농경문화인과 김 씨 왕족의 유목 문화가 공존,

신랑이 입는 옷
단령포는 유목민의 의상,
적석목곽분도
실크로드 상에 있는 중국 천산 주변에 있던 양식이다.

그것을 타고 저승을 가라.
편두

제정 일치 시대에는 그들이 마을 공동체의 지도자
서양인 메부리코의 모습에 동양인 쭉 찢어진 눈
신라귀족

사카족, 고깔모자, 무덤 양식, 금관

역시 대국이나 큰 것을 우러르는 무의식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혁거세 신화에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북방 유목민적 요소다.
소리개 또한 북방 샤머니즘과 관련된 동물이다.

건국신화에 나타났듯이 단군왕검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호랑이 부족은 주변으로 밀려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실제로 호랑이 산신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은 동시베리아와 백두산, 한반도로 이어지는 지역이다.
내몽골 서부의 남북으로 뻗은 대흥안령 산맥 서쪽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았다.
따라서 단군왕검 사회가 형성될 무렵 그 사회에 동참하지 못한 호랑이 토템 부족은 동으로 이주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퉁구스족의 곰신화의 원형이 그와 같기
단군 신화는 퉁구스 계통의 웅녀족과 외부에서 이주해 온 환웅족이 결합해서 생긴 신화다.

불감이라는 휴대용 불단

적석목곽분은 원형 봉토분의 윗부분이 함몰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오래되어 나무가 썩으면 돌무더기가 내려앉고 이어서 정상부가 함몰된다.

요하 문명의 후기에 홍산 문화 기원전 4500에서 3천년

단군 조선의 건국은 홍산 문화가 끝나고 한참 뒤에 일어난 하가점하층 문화 시기와 맞아 들어간다.

단군조선의 산신 신앙

구미호는 중국 전설 속의 신선인 서왕모를 위해 심부름을 한다.
삼족오도 그렇다. 아홉은 달의 변화 수 18년이 되면 한 번 왕복한다.
이것이 달의 변화수로 도교 계통의 책이나 비결서에 구변 구복이란 말로 표현되어 있다.

세계 종교 문화사에 나타나는 고깔 모자의 발생과 확산,

칠성 신앙이 우리 무속 신앙의 가장 깊은 뿌리다. 일반적으로도 무교가 단군 시대의 종교

메소포타미아, 고깔모자가 갖는 상징성 뱀의 머리,

할머니, 어머니, 처녀

신라는 원래 진한 사로국의 박씨계가 주도하던 나라에서 변한인들인 김 씨 왕족들이 주도하던 나라로 바뀌었던 것이다.

천편일률적, 하늘거울이 비추는 숲

첨성대는 북두칠성 신앙과 관련된 상징 건물,

기단부는 남쪽 변이, 정남에서 동쪽으로 19도 정도 돌아서 있는데, 방향은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방향.

첨성대 위에 누각이 있었으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외부에 따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
여러 차례 무너졌다 복원, 원래 모습을 상실했을 것.

음양 태극을 그린 것이 철학적으로 완성되어 사용된 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의 일이다.

태양문. 그 문양 양 옆에 그려진 연속 삼각형은 태양망이라고 해서 햇볕이 내리쬐는 것을 표현

칠지도는 분명히 실용적인 칼이 아니다. 그것은 상징성을 담고 있는 위세품이다.

요서와 요동에 걸쳐 있던 조선은 그 천 년 동안은 한반도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었다.

신단수와 칠성신앙을 결합한 예물,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한반도에서 흑요석은 백두산에서만 나온다. 동삼동 패총의 것은 일본산이다.
한반도 동남부와 일본 열도 서북 사이는 200킬로미터

조몬 토기

대지의 생명을 소로 인식
소 머리는 그 생명계를 끌고 가는 중심이다.
그래서 생명계를 끌고 가는 사람을 우두머리.

만주족은 햇살을 뱀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대지에서 싹이 돋는 것은 햇살, 뱀이 돼지의 자궁에 들어가 생명이 되어 나온다고 생각했다.

기름기가 많아 나무를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나

장나는 말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려 흙이 튀어 옷에 튀지 않게 하던 것.
1500여 년이나 된 나무 제품이 썩지 않고 남았다는 것이 기적이다.

일본에서 신라를 시라기, 백목,

벼농사,
야요이 시대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경
총균쇠 야요이 시대의 선진농업 기술을 갖고 이주한 한국인들이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다.

4세기 후반까지 일본에는 말이 없었다.

백제 멸망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은 자그마치 20만 명.

죠몬 시대 사람들은 기원전 1만 년 경 바이칼 호수에서 동으로 이동해 일본 열도로 들어갔던 사람들.
아이노족,

진한 중국, 신석기,
마한, 철기 시대 북경과 난하, 그리고 대릉하,
변한 부여족이나 신라 김씨 왕족의 문화 속에는 초원의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