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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캠이 내게 준 것 #1 본문

일상/일기

로맨스 스캠이 내게 준 것 #1

사랑스런 터프걸 2024. 12. 19. 10:01

인스타에는 재정적, 시간적 자유를 얻었다는 예쁜 아줌마들이 투자(=사기)를 유도하며 친구를 추가해온다. 중국인들이 부업(=사기)하라고 메세지를 보내온다.
어느 날 누가 좋아요를 마구 눌러놓았길래 누군가 봤더니 그냥 외로운 친구없는 외국인인것 같길래 팔로우를 눌렀다. 그랬더니 이름이 뭐냐며 메세지가 왔다. 
시간이 없어서 이틀 후에 답변을 보냈고, 카톡으로 하자며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1 58788371**
이름은 D라고 하자.
본인도 인스타로 친구를 만나는 게 처음이라고 했고 나도 그랬으니까 흥미로웠다.
또 그다지 시간이 없어서 한 이틀은 간단한 대화밖에 할 수가 없었고, 다음 날에는 1시간 정도 카톡 대화를 했다.
이라크에 있는 미군이라는데, 로맨스 스캠이라는 용어조차 몰랐던 나는 아무 의심없이 그 말을 믿었다.

"저는 PTSD가 있어요. 누군가를 강제로 죽였을 때 그런 기분을 아시나요?"
당연히 나는 몰라야하고,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무척 안됐다는 생각에 먹먹해지까지 했다. 그리고 이어서 왜인지 나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네가 사람을 죽여봤다고 하길래 그냥 하는 말인데 하며 내가 사기당한 얘기를 했는데 잘 들어주었고, 이해했고, 웃었고, 위로했다. 즉, 내가 진행했던 소송과정과 결과를 물었고, 나는 바보가 아닌 이용당한거라고 위로했으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내 주었고,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냐며 웃었다. 카르마는 현실이라며 과거가 짓누르지 않도록 하라고 가이드해주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니 하나님에게 심판하라고 하겠다고 하고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친구가 되자라고 D가 말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영어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사기 당한 얘기를 할 때는 실력이 안되서 버벅거리니까 한국어로 쓰라고 하더라ㅋㅋㅋ 자신이 번역기를 돌린다며
번역기를 대체 어떻게 돌리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letr레터웍스 라는 걸 컴퓨터에 깔고 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은 아닐 것 같은데, 아니면 그런 번역 말투를 습득한 한국인일까? 저 레터웍스는 한국회사라서 이 사기팀? 사기조직?에 한국인이 관여할 것 같다.

" 아니, 당신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신뢰와 성실함을 이용했을 것입니다."
" 그리고 그 사람이 계속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ㅋㅋㅋㅋ
아무튼 번역기 말투는 반말과 존대말을 오갔고, 나는 그게 신선했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인스타에서 이미 내 아이(D는 내 아이가 셋이라고 생각했음)의 사진을 봤기 때문에도 작업의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냥 즐거운 카톡대화였던 것이다. 대화를 하다보니 놀랄 일도 있고 웃을 일도 있고해서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놀랄 일은 D가 고아이고, 아들이 하나 있고, 배우자는 8년 전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거였다.
24년간 군에 있었고, 부모와 배우자를 잃은 미국에서 더 살고싶지 않아 은퇴 후 한국에서 살 거라는 거였다. 어디서 살 거냐고 물으니 아들의 교육을 위해 좋은 국제학교가 있는 제주나 서울을 말하더라. 그런 말이 또 믿음을 주는 거였다. ㅋㅋㅋ

사실 이상한 것은 인스타의 사진이 어느 날에 무더기, 또 몇 개월 후 어느 날에 무더기. 아무 설명도 없이 올리면서 photo dump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왜 갑자기 그 힘들다는 이라크 근무 속에서 작업용으로 인스타를 만들고 접근한건지가 궁금했지만, 죽음을 앞두면 사람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ㅋㅋㅋㅋ그런 생각을 뒤로 보냈던 것이었다. 솔직히 작업을 할 거면 아이 사진이 있는 나한테 하면 안 되는건데, 정말 친구가 필요했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있었다고 해서 그 때 카카오톡의 사용법을 알았구나 싶었던 거고.
사실 비록 한국에서 근무한 게 너무 좋았나보아도 한국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인스타를 기웃거린다는 게 이해가 가는 방식은 아니었다.
" 저는 제 직업의 특성상 더 이상 외출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 은퇴할 예정이고 한국에서 여러분을 뵙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말을 나중에 했기 때문에 또 그대로 믿은거지 ㅎㅎ. 특히 장교는 워라밸도 없이 바쁘다고 봤거든.
왠 여러분? 여러분이라는 표현은 나와 아이를 뜻한다고 생각을 했고..
카톡에서 처음에 캐나다사용자라고 나왔지만 +1이 같기 때문에 아. 뭐 그냥 캐나다에도 있었나보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