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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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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법, 타인을 사랑하는 법
이 두 가지를 큰 기둥으로 삼아 엄마 노릇을 정한다면 나머지는 스타일이고, 변주입니다.
엄마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이를 마음껏 사랑한다면 당신이 정하는 엄마 노릇은 무조건 옳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없다. 상황에 그냥 끌려간다면, 선택하지 않을 것을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과연 선택이 가능할까? 싶은 상황일지라도 선택의 자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삶의 이야기는 선택의 결과들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 전에 엄마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엄마 본인이 갖는 아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는 없다. 엄마들이 먼저 자신의 편이 되어 스스로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하는 이유다. 결함투성이이 나, 이중적인 나, 이기적인 나를 따뜻하게 안을 수 있어야 아이에게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생각을 멈추기 위해 영화를 보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랜다.
유머러스한 엄마는 절대로 아이와 틀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힘들고 절망스러운 일도 거리를 두고 보면 별 일 아니며, 웃을만한 부분이 있다는 소리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행복해보이는 사람도 막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좌절과 고통을 안고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겉으로 보기에 암울한 일도 들어가 겪어보면 할 만하고,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유머는 삶에 대한 열정의 다른 이름이다.
엄마가 길러야 할 육아의 기술을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유머를 꼽겠다.
인생의 장면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새로운 것과 지나간 것을 모두 포함한다. 보통 우리의 시선과 마음은 슬픔과 절망, 지나간 것에 묶여있게 마련이다. 유머는 슬픔에서 기쁨을, 절망에서 희망을, 지나간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며, 삶을 생기있게 만드는 힘이다.
나는 나의 문제가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알았다. 문제는 삶과 마주하는 것이라는 걸 - 윌리엄 예이츠
아이를 지금 훈육해야 하는지, 격려해야 하는지, 혹은 이 장난감을 사야할지, 저 학원을 보내야 할지를 고민할 때, 잠시 멈춰서 무엇이 이 아이를, 이 생명을 살리는 일인가? 를 물으면 답은 저절로 떠오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어야 성장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야 해결하려는 동기가 생깁니다. 문제는 삶을 괴롭게 만드는 어려움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자극입니다.
아이의 말을 들으라는 건 아이와 똑같이 느끼라는 말이 아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는 고유한 개인이므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 듣는다는 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다.
아이의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를 펼칠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을 때 무럭무럭 자란다.
그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겪은 일들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먹고, 걷고, 웃는 우리의 삶 모든 순간이 경이로운 기적이겠구나. 기적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른채 살았던 것이 불행이고 비극이었구나.
<아티스트 웨이>
자신을 보물처럼 대하라.
와~
아이의 말에, 행동에, 생각에 감탄을 보내면 그보다 강력한 응시와 칭찬은 없다.
나는 그저 아이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벽에, 외면의 벽이나 외면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등 뒤에 있는 부모를 느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힘을 느끼기를 바란다. 아이가 두려움을 느낄 때 그 힘을 떠올리며 한 걸음 내디딘다면, 나는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