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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순간이나 힘든 시기에 퇴행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가 다시 안심하고 자신감을 얻기위한 시간을 갖는것은 모두 정상이라는 것이다. 조금 전 넘어져서 아파하고 있는 5살 마르탱이 18개월 된 아기처럼 울면서 자기 젖병을 찾고,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퇴행은 병적인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 아니다. 퇴행은 일시적으로 이전의 상태, 즉 아이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경험들을 수용하고 통합하는 단계인 비통합상태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에게 공격을 가하며 이를 파괴하려는 아이의 시도에 가족이 맞서서 무너지지 않고 이를 견뎌내고 살아남는다면, 아이는 비로소 놀 수 있게 된다.
모든 좋은 것들을 파괴하려는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자신으로부터 나왔다고 여겼던 모성적 돌봄 뒤에는 사실 누군가(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는 아이에게 그런 파괴욕구는 굉장히 공토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아기는 젖을 먹을 때 그에게 이용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 누군가(엄마)를 굉장히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발견을 하게 된 아이는 그것을 통해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정서발달이 건강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아이에게는 이제 자신이 파괴했을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고치려는 욕구가 생긴다.
아이, 더 보편적으로 인간은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예상하지 못한 것과 마주칠 때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수용 가능한 것으로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즐거움의 원천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한다. 그런 이유로 해서 충동이나 공격적인 감정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자기 실현을 위해서 청소년은 사회를 필요로한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자유를 구할지라도 그것은 절대로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한다.
청소년은 현실과 마주하고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아직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잔인함과 고통을 감당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는 동시에 (누군가로부터)무엇인가를 배우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