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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memo

scrap 20.

사랑스런 터프걸 2013. 12. 18. 12:54

사랑 받는 사람들의 비밀


사랑 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직장이나 가정 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진 비밀은 무엇일까?
일본의 정신 의학자 사이토 시게타가 쓴 「사랑 받는 사람들의 9가지 공통점」에
보면 사랑 받기의 가장 중요한 비밀은 바로‘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사랑 받는다.
또 너무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알맞게 너그러우며
인생을 80퍼센트로 사는 사람에게는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지는데,
이런 사람은 남에게도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으며
과잉 친절이나 배려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기다릴 줄 안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시간으로 바꾼다.
모임에서 늦는 사람이 있을 때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즐거운 이야기로 지루한 시간을 잊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과연 누가 더 인기가 좋을까?


혼자서도 즐길 줄 안다.
자기 일을 알아서 해결하고 혼자서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즐겁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불평하는 사람보다는 작은 일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목표를 정하여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자기만의 일이나 취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에 한 번씩 웃었던 일에 대한
웃음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다.

 


의지가 된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든든한 의논 상대가 되어 주는 사람은
대개 인내심이 강하고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남의 실패도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나쁜 소문이 돌았을 때 퍼뜨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멈춘다.
위로나 충고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한 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사람들은 이런 이에게 신뢰감을 느끼고 마음을 털어놓는다.


다른 사람을 높여 준다.
누구에게나 한가지 좋은 점은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남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내고 이를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잘 이해하고
개성이나 약점 까지도 감싸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한다면
다른 이가 나를 좋아할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벤치마킹①] 초일류기업의 경쟁력

노키아… ‘겸손+스피드=노키아 웨이’
  
“연구개발·디자인이 핵심, 부품은 아웃소싱”
 
글 김종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연구원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의 기업 노키아는 헬싱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거래주식의 시가총액 중 60%, 핀란드 전체 R&D 투자비의 3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이 나라 경제의 핵심이다. 2002년 말 현재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약 35%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노키아는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친 이후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1800년대 중반 작은 제지회사로 출발한 노키아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통신업체가 될 수 있었을까?

  1865년에 설립된 노키아는 원래 제지회사였다. 이후 고무·금속·가전·전자·통신기기 등으로 잇따라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1970년대 말에는 유럽 굴지의 재벌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유럽을 휩쓴 경제불황으로 핀란드의 경제불안이 심화되고 주요 교역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로 수출 부진이 겹치면서 노키아는 급격한 경영악화로 인한 도산의 위기에 직면했다.
  게다가 당시 CEO였던 카리 카이라모(Kari Kairamo)가 유럽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시도했던 M&A를 통한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 대부분의 사업 부문을 부실화시키면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이후 갖은 회생 노력에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노키아는 92년 1월 놀랄 만한 선택을 했다. 당시 임원 서열 10위, 나이 41세에 불과한 요르마 올릴라(Jorma Ollila)를 노키아의 CEO로 임명했던 것이다.

“죽든 살든 통신과 함께 한다”

  신임 CEO로 임명된 올릴라는 향후 노키아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우리는 통신 분야와 함께 살거나 죽는다. 통신사업과 관련 없는 부문은 모두 철수한다.”

   이러한 요르마 올릴라의 전략은 9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전략은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빠르게 전개됐다. 95년을 전후해 가전 제품 사업을 매각했다.

  이로써 90년부터 진행됐던 종이 펄프와 고무장화, 노키아 데이터 사업 매각에 이어 95년 가전제품 사업을 매각,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는 휴대전화와 통신 인프라를 두 축으로 하는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업의 구도를 완성한 것으로 노키아의 선택과 집중 제1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신업계의 변화는 노키아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빨라지고 있었다. 인터넷을 핵심으로 한 정보통신 혁명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노키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90년대 후반부터 펼치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선택과 집중 제2기이다. 이 시기에 노키아는 통신 인프라 부문에서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이나 ADSL (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 등에 의한 통신 고속화 기술에 박차를 가했고, 심비안(Symbian)·블루투스(Bluetooth)·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같은 모바일 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텔레커뮤니케이션과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접목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러한 노키아의 변신은 아픔을 동반한 쓰라린 시간을 거치면서 이뤄졌다. 그룹의 절정기였던 88년 54억 달러의 매출, 전체 종업원 수 4만4천여명이었던 것이 93년에는 매출 41억 달러, 종업원 수 2만6천여명으로 감소했던 것.

  그러나 아픔은 잠깐이었다. 그로부터 9년 후인 2002년 노키아는 매출 3백15억 달러에 전체 종업원 수 5만2천여명이라는 경이적인 경영실적을 실현, 초일류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유럽에는 스웨덴의 에릭슨·프랑스의 알카텔·독일의 지멘스라는 거대 통신회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거목’들에 끼어 있던 노키아라는 중견 통신업체가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노키아의 성공을 잘 대변해 주는 ‘노키아 2110’이라는 모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노키아가 94년에 발매한 ‘2110’ 휴대폰은 무게 2백36g의 아주 작은 사이즈로 데이터·팩스·SMS(Short Message Service) 기능을 갖춘 GSM 대응 디지털 휴대폰이었다. 이 제품의 최대 특징은 다양한 기능과 함께 차별화된 디자인과 간편함이었다.

  이것은 세계 최고이던 모토로라나 에릭슨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본체 커버를 벗긴 후 백색·적색·청색 등 옵션으로 마련된 다섯 가지 색깔의 커버를 사용자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옵션에 커다란 액정화면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제품은 94년 「비즈니스위크」지에 의해 ‘최고의 신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평등하고 간결한 조직이 핵심

 ‘2110’의 성공은 노키아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즉 휴대폰이 머지않아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범용 정보기기가 될 것이라는 것과 이제 휴대폰은 더 이상 유선전화의 연장선상이 아닌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 독특한 개성과 연령·직업·성별에 맞춘 디자인과 서비스가 복합된 미디어 매체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노키아는 통신산업의 특성을 그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꿰뚫고 있으면서도 결코 자만하는 법이 없다. 노키아는 ‘항상 최선을 다하되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고객을 살피지 않으면 다시 옛날과 같은 어려움에 빠질 수 있음을 항상 강조한다. 이러한 겸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노키아식 경영 스타일인 ‘노키아 웨이’(Nokia Way)다.

  고객만족·개인존중·목표달성·계속학습은 노키아가 중시하는 핵심가치로, 전 세계 모든 임직원은 이 4대 가치를 기본으로 항상 비즈니스에 임해야 한다.

  노키아는 또 수평적인 조직구조와 열린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언제든지 유연하게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 등 유럽형도 미국형도 아닌 바로 노키아 스타일을 갖고 있다. 노키아의 빠른 의사결정은 아주 평등하고 간결한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본사의 조직구조는 CEO를 정점으로 부사장-디렉터-매니저-일반사원의 5단계로 구성돼 있고,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현지법인은 디렉터-매니저-일반사원이라는 보다 간결화된 3단계 구조로 돼 있다. 그 외에 다른 불필요한 위계나 조직은 없다.

  사업방식에 있어서도 노키아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노키아는 연구개발과 디자인을 핵심역량으로 삼고 부품 제조 부문은 원칙적으로 보유하지 않는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계속 늘려 전 세계 50개 이상의 핵심지역에 R&D센터를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직원의 30% 이상에 해당하는 연구개발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부품 생산과 조달은 모두 외부 공급업체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 회사의 스피드 경영은 이런 기반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키아는 앞선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화·TV·카메라·PC 등 모든 정보기기의 기능을 인터넷 상에서 통합하는 꿈의 휴대폰 개발을 목표로 전력을 다하고 있다. 곧 휴대폰이 모든 정보기기의 핵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키아는 현재 휴대폰 사업이 효자 사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성공이 앞으로 계속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찾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공격과 수성의 전략을 잘 구사하고 있는 기업 노키아가 꿈꾸는 통합 모바일 세상이 과연 올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벤치마킹②]초일류기업의 경쟁력

 
보잉… 미래 위한 과감한 투자전략이 성장 원동력

끝없는 혁신과 한발 앞서가기

글 김종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연구원
 

  지난 1916년 윌리엄 E. 보잉(William E. Boeing)이 창업한 이래 올해로 87년째를 맞는 세계 최대의 항공우주산업 업체 보잉은 초창기부터 많은 역경을 겪었지만 독특한 경쟁력으로 이를 극복해 온 기업이다. 보잉의 경쟁력은 항상 한 발 앞서가는 선견지명, 그리고 효율과 혁신을 우선시하는 기업 문화에 있다.

  보잉의 성장 과정은 험난했다. 기술 진보를 선도해야 하는 항공산업의 구조적 특성뿐만 아니라 군수산업 내에서 입지 확보, 장기간의 R&D와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신형 항공기 개발 리스크, 거대한 조직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노사갈등, 그리고 유럽 제국의 자존심을 건 에어버스의 도전 등이 보잉의 앞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보잉의 고난과 극복의 역사는 곧 항공산업의 역사를 의미한다.

 특별팀 구성해 미래사업 개척

  보잉에게 다가온 가장 큰 시련은 대략 6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찾아왔다. 60년대 후반 점보 제트기인 B747을 개발한 보잉은 과다한 개발비용에 항공산업 불황까지 겹쳐 파산 위기에 몰렸다.

  69년까지 1백60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던 B747이 이후 72년까지 단 한 대도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재무 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당시에 추진하고 있던 초음속 여객기 개발 계획도 무산됐다.

  69년 신임 CEO로 임명된 윌슨(Thorn ton Wilson)은 불황 타개를 위해 가장 먼저 비대해진 조직 구조를 정비했다. 윌슨은 취임 전 10만5천명에 이르던 종업원을 3만8천명으로 크게 감축하는 혁신을 단행한 끝에 보잉을 기사회생시켰다.

  80년대에도 보잉은 또 한 번의 시련에 부닥쳤다. 이때의 위기는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 등 4개국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에어버스라는 경쟁기업의 급부상이었다. 에어버스는 당시 약 5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한 A300·A310 등으로 보잉의 아성에 강력히 도전했다.

  이들 기종이 B747·B767 등의 경쟁 기종으로 부상함에 따라 보잉은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30억 달러 이상을 개발비로 쏟아 부었던 B757과 B767은 가장 큰 장점이었던 높은 연료 효율성이 당시의 유가 하락으로 고객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B747의 추락 사고가 겹치면서 안전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보잉은 이 위기를 군수품과 우주사업이라는 사업다변화와 민간항공기 시장에서의 점유율 회복으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위기 다음에는 기회’라고 했던가. 보잉은 80년대 중반 7만4천명의 기업조직을 90년 15만명으로 두 배로 늘리는 호시절을 누릴 수 있었다. 두차례의 큰 시련을 유연하게 극복하면서 세계 최고의 항공기 제작업체로 거듭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보잉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보잉은 ‘사업개발국’(OCBD:Office of Corporate Business Development)이라는 독특한 조직을 활용했다. 경기변동과 계절요인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항공기 시장의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11명으로 구성된 싱크탱크 OCBD는 특히 생산라인의 다각화에 초점을 두고 두 가지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첫째는 10개년 사업계획을 개발해 정기적으로 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업 단위별로 개발되는 사업안들에 대한 평가였다.
 
  이 팀에서 시작된 다각화 전략은 보잉의 사업영역을 경철도 운송사업에서 도시계획·폐수정화·담수시설의 개발, 심지어 부동산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대했다. 그밖에도 OCBD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했으며, 보잉의 미래상에 대해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는 와중에 보잉은 조직 내에 팽배한 자만심으로 몸살을 앓은 적도 있었다. 장기 결근이 늘어나고 있었고, 고객의 불만과 결함 부품 때문에 많은 문제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장기 결근이 늘면서 품질에 대한 고객의 불만과 결함 부품의 출하, 납기 지연 등이 급속하게 늘고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성장하고는 있었지만 성장의 안쪽에서는 경쟁력을 상실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IT 활용한 생산성 혁신으로 성공

  문제가 커질 조짐을 보이자 보잉은 지난 85년 ‘오퍼레이션 이글’(Operation Eagle)이라는 새로운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의 도달점은 권위적인 상의하달식 문화를 보다 참여적인 기업문화로 변화하는 것. 이를 위해 보잉은 직원들에게 작업표준을 충분히 숙지시키고 이를 교육하기 위한 전사적 차원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 과정에서 채택한 보잉의 윤리강령은 이후 전 임직원들의 행동원칙이 됐고, 자율적인 기업문화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윤리강령의 골자는 ‘보잉의 종업원은 최고의 윤리 기준으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해야 하며, 스스로 신용을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 모든 고용자와 고객, 공급업자, 그리고 파트너를 공정하고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추진했던 정보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혁신은 항공산업에 있어 기념비적 이정표를 남겼다.

  보잉 역사상 일곱번째 최고경영자인 콘딧(Philip M. Condit)은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답게 취임 후 제품생산에 컴퓨터 디자인 시스템(CATIA: Com puter-Graphics Aided Three-dimen sional Interactive Application) 등과 같은 컴퓨터 설계 시스템을 도입, 최대 라이벌사인 에어버스와의 차별화는 물론 원가 절감과 항공기 제작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등 경영혁신을 이룩했다.

  보잉은 또한 인트라넷을 사용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 대표적인 기업으로 미국 경영대학원의 케이스 스터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보잉은 지난 93년부터 정보공유 시스템을 연구해 인트라넷인 ‘보잉웹’을 탄생시켰는데, 현재 사용자는 2만여명에 달한다.

  보잉은 최종적으로 미국 내 직원 9만6천명의 80%가 ‘보잉웹’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보잉웹’을 통해 문서 검색은 물론 이메일 송수신과 프로젝트, 회의 스케줄, 심지어 직원 개인 웹사이트도 ‘보잉웹’과 연계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보잉이 과거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현재까지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끊임없는 내부 혁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잉의 자체 혁신 노력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올해 보잉은 우주통신산업 부문과 방위·미사일 부문을 통합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우주통신산업 부문은 연간 순익이 6억1천9백만 달러에 불과해 방위·미사일 부문의 13억5천만 달러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우주통신산업 부문이 미래 보잉의 핵심산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보잉은 이 사업의 발전을 위해 과감하고 결단성 있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전략, 이것이 바로 보잉을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벤치마킹④]초일류기업의 경쟁력

 사우스웨스트 항공… “직원이 가장 중요한 고객”
 
 재미있는 일터에서 수익 ‘쑥쑥’
 
글 김종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연구원

 

  지난 2000년 발생한 9·11 테러는 미국 항공업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극심한 불황으로 인해 운항편수를 줄이고 대규모 인력을 감원하는 등 생존을 위해 최악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사우스웨스트항공사만은 단 한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고, 회사 설립 이후 32년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올 3분기 순이익만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나 증가하는 등 사우스웨스트는 불황을 모르는 기업으로, 명실공히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연 사우스웨스트가 1971년 미국 텍사스에서 단 3대의 비행기로 시작해 미국 전역 52개 도시에 취항하는 2백6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대형 항공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파일럿이 체크인 도와주기도

  사우스웨스트가 후발주자로 미국 항공시장을 급속히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기존 항공사들이 거점 공항을 중심으로 한 허브 루트 전략(hub and spoke routing)으로 일관한 데 반해, 사우스웨스트는 출발지와 도착지 간 평균 거리를 3백75마일로 유지하면서 중소 규모 공항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포인트 루트 전략(point to point routing)을 펼친 데 있다.

  뉴욕의 JFK나 시카고의 오헤어 같은 대형 공항은 착륙비가 비싸고 이착륙이 지연될 때가 많아 항공기가 연착하거나 취소될 경우 고객들에게 큰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연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사우스웨스트는 가장 큰 공항만을 고집하지 않고, 이착륙 시 혼잡이 덜하고 착륙비가 낮으며 대도시에 인접해 있는 공항들을 주로 이용함으로써 항공기 운항 비용을 대폭 낮췄다.

  예를 들어 시카고의 오헤어 대신 미드웨이 공항을, 보스턴 공항 대신 프라비던스라는 조그만 공항을 주로 이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노선전략 외에도 비행기종을 보잉737로 단일화해서 유지관리 업무를 효율화했고, 부품의 대량 구입에 따른 할인혜택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사우스웨스트는 기존 항공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항공요금 시대를 열면서 약 3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국 내 6위의 메이저 항공사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사우스웨스트는 남들이 생각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발상으로 승객들을 불러모으는 데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반적으로 승객들이 비행기를 타면 이륙하기 전 스튜어디스가 거의 기계적인 제스처로 비상 시 탈출 요령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를 귀 기울여 듣는 승객들은 거의 없다.

  사우스웨스트의 한 직원은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유행가에 비상 시 행동요령을 가사로 붙여 노래로 불렀다. 여기에 하모니카를 연주하거나 마술쇼를 하는 등 이색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 많은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또한 스튜어디스들은 단정한 유니폼 대신 편안한 남방에 굽 없는 운동화 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어찌 보면 서비스가 가벼워 보이고 승객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유머와 서비스로 고객을 편안하고 기쁘게 해주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사우스웨스트는 종업원의 만족을 매우 중시한다. 이 항공사 사무실 벽은 온통 직원 가족들 사진으로 도배돼 있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축하를 해줌으로써 그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회사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진들은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회사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승객이라도 항상 옳지는 않다”고 말하며 직원들의 기를 살려준다.

 
  종업원들을 중시하는 이러한 기업문화는 주인의식의 제고를 통해 조직의 효율적 운영으로 이어지는데,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에서는 파일럿이 시간이 나면 체크인을 도와주고, 기내 승무원들이 수화물 처리를 돕기도 한다.

  이러한 직종 간 협력은 다른 항공사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이들은 주말에 별도의 수당 없이 일하러 나오기도 한다. 종업원의 주인의식과 이로 인한 직종 간의 자발적 협력은 효율적인 인력 활용, 지식·정보의 교류, 창조적인 개선 등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예상외로 사우스웨스트는 미국에서 노조 활동이 가장 활발한 기업 중 하나이다. 현재 전체 직원 중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들의 비율은 84%이지만, 지난 32년 동안 단 한번의 파업을 제외하고는 노사분규가 없을 정도로 단결된 노사화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입사 기념일마다 임금 인상

  다른 회사에 비해 특별히 급여가 높지 않은 이 회사의 이직률은 연 4.5%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거의 모든 부서 직원들의 연봉은 4만∼6만 달러이며, 모든 직원들은 입사 기념일마다 임금이 인상된다.

  경영진들은 항공업계 경영진들의 평균 임금보다 30% 정도 적게 받지만 종업원에게는 최고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영이 아무리 어려워도 거의 해고를 하지 않는 경영원칙으로 유명하다.

  시간제 근로자를 거의 채용하지 않고 다른 항공사들처럼 아웃소싱 계약을 많이 체결하지도 않는다. 회사와 종업원이 함께 서로를 생각하고 그 가운데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노조와 회사가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타적이고 수평적이며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 문화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우스웨스트 하면 CEO인 허브 켈러허(Herb D. Kelleher) 회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직원 스스로가 일하고 싶도록 만드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매우 강조한다.

  켈러허는 “비즈니스는 재미있을 수 있고, 또 재미있어야 한다”며 점잖은 오찬 석상에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직원 생일과 같은 기념일에 파티를 열고 함께 어울려 자주 술을 마시는 등 재미있는 직장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사우스웨스트의 이러한 자발적 문화는 유머 감각과 팀워크에 기초한 ‘즐거운 일터’라는 공유된 가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직장은 고객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직원들이 스스로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한다.

  미국 항공업계 내에서 최저의 고객 불평건수, 가장 빠른 수화물처리, 정시 도착률 1위 등 최고의 서비스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유연한 사고로 재미있는 일터를 만들어낸 최고경영자와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합심해 기존 발상의 틀을 깨고 만들어낸 차별화 서비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