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사랑이란 사랑하고 있는 존재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의 대상을 사랑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일하게 되어 있다.
책임감 - 진정한 의미의 책임감이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행위이다. 책임은 다른 인간존재의 요구 - 표현되었든 표현되지 않았든 - 에 대한 나의 반응인 것이다. '책임진다'는 것은 '응답'할 수 있거나 마땅히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형제의 삶은 형제의 일일 뿐 아니라 곧 나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것처럼 동료에게도 책임의식을 갖는다.
존경 - 존경이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지식 - 관심, 비밀에 대한 호기심
신의 지혜는 운명에 다름 없는 것이어서 그 지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한다. 아버지는 어린애를 가르치며, 어린애에게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이 세계와 삶 전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이 세계와 나 자신까지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동정은 지식과 동일한 시각의 요소를 갖고 있다. 구약 성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너희들은 Egypt 땅에서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을 사랑하라."
대부분의 어머니는 젖을 줄 수 있지만 꿀 까지도 줄 수 있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어린애에게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좋은 어머니'여야 하며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 대한 태도는 결코 모순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연결의 관계이다.
진실한 사랑은 생산성의 표현인 동시에 보호와 책임 존경과 지식을 담고있다. 그러한 사랑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사랑받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인 갈망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힘의 실현이며 몰입니다. 사랑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긍정은 본질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구현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고 있다. 한 개인에 대한 사랑 속에는 기실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녹아들어 있다.
자신의 생명과 행복, 성장과 자유에 대한 긍정은 자신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인 보호와 책임, 존경과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 만일 한 개인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현대자본주의는 원만하게 조직에 협력하며 더욱 더 소비적이 되고 취미의 표준화와 쉽게 영향을 받으며 예측될 수 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군중 속에 있음으로서 개인의 안전을 느끼게 되며 따라서 사상이나 감정 또는 행위에 있어서 각기 차이점은 전혀 나타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여기서 또 한가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오류에 대해 걸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사랑이란 전혀 갈등이 있을 수 없는 상태라고 믿는 환상이다. ..이것은 보다 명료해지며 감정의 정화작용을 하며,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보다 풍부한 지식과 큰 힘을 얻게 된다.
사랑은 그들 두 사람이 자기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서로를 만나게 될 때, 그럼으로서 제각기 자기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오로지 이 같은 '중심적 경험' 속에 인간의 현실이 존재하고 생동감이 있을 뿐이며 그 속에만 사랑의 기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한 사랑은 끝없는 도전이다. 그 사랑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며 함께 성장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다.
...사랑의 존재를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는 관계의 깊이, 거기에 관련된 두 사람 각자의 생기와 힘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이성'이다. 이성의 뒤에 있는 정서적 태도는 '겸손한' 태도이다.
자신에 대한 신념은 곧 약속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다. 니체의 말처럼 인간은 약속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규정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념은 인간존재의 한 조건이다.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신념, 즉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과 그 신뢰성에 대한 신념이다.
활동...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활동, 즉 자기 힘의 생산적 활동을 뜻한다.
훈련, 정신집중, 인내, 조건
훈련이 왠지 고통스럽게만 생각되고 또 고통스러워야만 도움이 된다는 사고는 훈련에 대한 서구적 개념의 불행한 측면 가운데 하나이다.
정신집중을 익히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책을 읽거나 radio를 듣거나 혹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하지 않고 혼자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정신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서, 이러한 능력은 사랑의 능력에 있어서 절대적인 소중한 조건이다. 역설적이 되겠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다.
그는 마음을 비우기 보다는 앞으로의 계획이라든가, 그가 맡을 업무의 처리라든가 혹은 저녁에 어디를 갈 것인가 하는 상념들로 오히려 머리 속이 꽉 들어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음 속의 온갖 잡다한 상념들을 떨쳐버리고 호흡에 맞춰 신경을 풀어놓는 것, 그러나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단지 호흡을 쫒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호흡을 느낄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내 힘의 중심, 혹은 내 세계의 창조자로서 자기를 인식하려 하는 것 등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적어도 매일 아침,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20분 정도는 (더 길어도 좋다) 정신집중 연습을 해야 한다.
그들은 만일 정신을 집중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욱 피곤해질 거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사실 어떤 일이 됐건 정신을 집중해서 한다면 더욱 각성시키게 되지만(나중에 가서야 자연스럽고 유익한 피로가 생길테지만) 정신이 집중되지 않은 가운데 행해지는 모든 일은 사람을 노곤하게 만들며 그날 밤 불면에 시달리게 된다.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다시 말해 여기에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는 동안 다음 일은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만일 어른이 중요한 일을 추구하면서 어린애와 같은 인내와 정신집중을 행하게 된다면 무슨 일을 성취하지 못하겠는가?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속해있는 역설적 상황은 깨어있을 때에도 반쯤은 가수상태이고 또는 잠들거나 자고 싶을 때에도 반쯤은 깨어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깨어있다는 것은 싫증을 느끼지 않거나 싫증을 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긴장과 각성과 고양된 생명력의 상태를 우너한다. 이러한 상태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갖출 때에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른 영역에서 비생산적이라면 사랑에서도 생산적일 수가 없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