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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의 자녀교육법 본문
칼 비테(Karl Witte)(1767∼1845)는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재였던 Jr. Karl Witte의 아버지이자 목사였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을 독특한 교육이념과 방법으로 훌륭하게 길러낸 경험을 바탕으로 1818년에 저술한 《칼 비테의 교육(The Education of Karl Witte)》이란 책은 조기교육 이론서로써 지난 200년 동안 영재교육의 “경전”으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그의 아들 칼은 아버지의 철저한 교육 프로그램에 의해 9세 무렵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였으며, 또한 그는 10세에 최연소로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13세에 괴팅겐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6세 때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곧바로 베를린 대학의 법학부 교수로 임명되었지만 프러시아 왕의 명을 받아 18세에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법률공부와 함께 단테에 흥미를 가지고 종래의 단테 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단테의 오해》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1883년 83세로 그 눈부신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국왕의 뜻에 따라 독일의 각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계속하였다.
자유자재로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뒤에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그때 칼은 겨우 일곱살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라틴어를 싫어한다. 라틴어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들이 요람을 탈 때부터 기초적인 라틴어를 가르쳤다. 아이네이스를 들려줬다.
칼이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난 13개국 언어로 아침인사를 가르쳤는데 칼이 매우 재미있어하고 빨리 배웠다. 난 아이들이 장난감과 인형을 좋아하는 점을 이용해서 매일 아침마다 칼이 각 나라를 대표하는 13개의 인형을 들고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말하며 인사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부자는 각종 언어로 책을 읽고 노래를 불렀으며 수수께끼 놀이, 문장 만들기, 속담 맞추기, 이야기짓기 등의 게임을 했다. 공부방법이 재미있어서인지 칼은 투정부리지 않고 즐겁게 외국어를 배웠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선장이 항해일지를 안 쓰는 것과 같아서 원래 세웠던 계획을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