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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당신에게 : 흔들리는 청춘에게 보내는 강금실의 인생성찰 본문

책/800

서른의 당신에게 : 흔들리는 청춘에게 보내는 강금실의 인생성찰

사랑스런 터프걸 2010. 6. 25. 10:32
서른의당신에게흔들리는청춘에게보내는강금실의인생성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강금실 (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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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에도 매이지 말자. 타인이 기억하는 나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고뇌의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러 끝내 좌절하지 않고 고뇌할 때 비로소 기연을 체득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극악한 고뇌의 절망적인 상황은 틀림없는 평안이다. 왜냐하면, 극악한 고뇌의 절망적인 상황은 두 번 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죽음을 이긴 사람에게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죽음은 결코 두 번 오지 않는다.

투사는 무언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지요. 그러나 전사는 자기 삶을 이미 죽음 속에 던지고 살아남음의 미련이 없는 자정까지 가서 삶 그 자체를 대면하고 싸웁니다. 살아있음의 안온함과 평화를 원하지만 삶의 전장은 그것을 방해하는 무엇들과 그침없이 다투고 다투면서 궁극에는 결국은 자기 자신안의, 세상의, 방해하는 무엇들의 힘 속에 투항하고자 하는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아닌가.

더 늦기 전에 가슴에 남은 상처의 기억들과 화해하고, 나로 인하여 마음 아팠던 타인의 생들에게 씻김하듯 용서를 구하고 싶어진다.

이해는 가지만, 개인의 삶이 전체에 짓밟혀 뭉개지도록 놓아두는 것 보다는 그 짓누르는 발자국 밑에서라도 틈새를 찾아 살아있는 생기와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생을 만끽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원래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없고, 줄기찬 슬픔의 소낙비 속에서 웃는 얼굴이 삶의 아이러니로 존재하는 삶.

이제와서 보면 산다는 것은 모든 걸 다 헤아리고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는 일일 뿐인데. 태연하게 있으면 지나가는 것이었는데. 마음 상할 것이 아니라, 상한 마음으로 헤멜 것이 아니라, 자기 돛대만은 붙잡고서 말이다. 지나면 다 사라져 버릴 것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빠져 버리면 된다. 좋아할 것을 찾자. 감옥 문을 열자. 다만 지나친 음주나 도박처럼 영혼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악습만 아니라면.

스스로 무너지고 위기에 처하는 것은 어리석다. 왜냐하면 세상은, 사람들이 빚어놓은 세계는, 내 생명을 자진 납부할 만큼 존귀하고 위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들을 무시하거나 자만적 허무에 빠지는 것도 어리석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보다 더 존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님께서 기도하는 법을 설교하셨다. 긍정적인 말만 하라는 것이다. 바라는 희망과 기대에 대하여. 신세 한탄을 늘어놓으면 그 말 속의 짜증스러움이 사실이 되어 나를 구속하는 믿음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잠든 나야 마음대로 안 되지만 깨어있는 나는 가능한 한 사랑하는 것, 아름다운 것, 밝은 것, 희망과 기대만을 상상하고 말하고 실천하면서 스스로 행복해져야 하겠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기 힘든 현실의 좁은 틈바구니를 비집고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Carpe Diem. 순간에 충실하라!

발레와 같은 춤은 고도의 근육훈련에 의한 것으로 나이가 들어서는 출 수가 없다고 한다.

무엇을 하든, 일이든지, 취미생활이든지, 각각이 삶 속에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삶의 따사롭고 고마운 인연과 축복의 만남 속에 녹아있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 사랑이 우리에게 남는다. 사람에 대한, 사람살이에 대한.

살다보면 참 세월은 하수상하게 흘러가서 어느 새 만난 사람과 헤어져 있고, 새로운 사람과 또 만나고 한다. 그러니 만날 때 우정과 의리로 사랑하고, 헤어지면 아쉬워하지 말아야 한다. 미련을 남기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 자리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다시 어느 지점으로 이동하면 또 거기에서 맛있는 자장면도 먹으며 생을 즐겨야 한다. 

당신의 일상 속에서 당신이 일과 거리에서 돌아온 그 시간에 사랑이 당신을 기다려 주고 있는가요?
당신이 몸과 마음을 의지할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찬 거처가 있는가요?
당신 정말 살아하고 있어요? 교감하고 있나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하는데 혹 외로운 것 아닌가요?
진실을 말해봐요. 당신 마음 깊은 곳, 허전하지 않나요?

출신지역, 직업, 거주지 이런 사회적 기호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맨 몸의 표현을 넘어선 온갖 장식들 다 거둬내고서 그러고도 그 사람의 살아있음 이라는 것, 그리고 그의 죽음까지도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지 한번쯤 질문해 볼 만 하다.

작가들이 사랑의 부재를 다루는 이유는 진정한 사랑과 소통, 존재의 거처를 가득 채움이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어렵기 때문일 터이다. 그리고 한 편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강렬한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빈 집에 사랑을 가두는 의지는 사랑을 갈망하는 그 만큼의 강렬한 열망이 있기에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연, 슬픔, 허무, 부재는 사랑에 대한 포기되지 않는 열정적 지향의 진짜 시작일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우리 살아있는 날까지 사랑은 포기될 수 없다. 잠시 그 정류장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있다 한들.

능인이란 능히 어질다는 뜻으로 부처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신다. 사람 세상에서 사는 법을 따라 이르고자 하는 완성태가 부처라고 한다면, 능히 어진 그 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과 악수하고,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듣는 마음 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자기 앞의 온갖 시련과 갖은 일에 사로잡히지 말고 아주 크게 흐르는 세상과 우주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도 하셨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행복 그 자체에 있다.

여러나라를 돌아다닐 경우 더 가난한 나라부터 가는 것이 즐거운 여행의 비결이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는 덧입는 옷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삶의 방식이다. 여유가 있어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있는 수준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나를 표현하는가 하는 양식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