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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은누구인가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
지은이 |
김진애 (샘터, 20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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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대해서 내가 권하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마루에서 아예 없애든가 아니면 가족 모두 같이 볼 수 있기 하든가. TV가 마루에 있다면 부엌의 싱크대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자.
한 집에 두 대 이상의 TV를 놓는 요즘 시대라면 아예 방으로 들여보내는게 가족의 이야깃거리 만들기에 좋을 수도 있다.
우리 주부 모두가 슈퍼주부가 될 수도 없으며 '독재자'는 선의건 악의건 항상 피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상에서 먹기만큼 '섹시'한 행위는 없다.
에로틱은 포르노와는 다르다. 포르노가 적나라한 노출과 선정적 표현으로써 순간적인 자극효과를 노린다면, 에로틱이란 사람의 심장을 녹여내는 상상효과가 가미된다. 포르노가 쉽게 싫증이 나는 반면, 에로틱이 지속적으로 호기심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사람을 다차원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두움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곳이 있어야 빛나는 곳도 살아난다. 모쪼록 집에는 '천국과 같은 밝은 곳'과 '지옥과 같이 어두운 곳'이 같이 있는 게 좋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빛들의 스펙트럼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공간을 거닐어볼 수 있다. 아, 나는 찬란한 빛과 깊은 어두움 사이를 오가는 집에서 살고 싶다!
집이란 태양과의 관계맺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깃적 생각을 해보라. 기분 좋기 위해 어떤 요구도 서슴없이 하는 감각이다. 말하자면 동물적 감각이다. 인공 환경에서 살면서 이런 타고난 감각을 갈고 닦지 못하고 자꾸 잃어가는 것이 문제다. 우리의 기분좋음에 대한 감각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편리감각이 높아지는 것에 비교해 볼 때 영 균형이 맞지 않는다.
우리사회에서 이른바 브랜드 명품 선호가 팽배하는 이유도 명품의 질을 소화하기보다 그 브랜드의 이름값에 기대어 자신을 높이려는 자신없음 때문일 것이다.
집 밖에서의 많은 경험이 집을 통해 길러지고 적이 소화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기억이 나세요? 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추억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의 정서, 우리의 심리, 우리의 감정, 우리의 성향에 대해 좋은 단서를 찾아서 우리의 현재 삶에 표현하기 위해서다. 우리 자신을 알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살 수 있고, 더 풍부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 느낌 때문에 우리 사는 의미가 보다 더해진다.
아이들 방은 '방에서 자꾸 나가고 싶은 유혹'과 또 '방에서 자기 일만을 꾸미고 싶은 유혹'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만드는 게 좋다. 유혹 속에 자라면서 유혹을 이겨내며 크는 아이들, 항상 자신이 선택하는 아이들이 잘 큰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런 방해물을 이기고 자기 일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길게 보면 애들에게 좋을 것이다.
내 원칙은 두 시간을 절대로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시간을 넘기면 요리하기도 지치기 때문이다.
주부의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 건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기적이면서도 또 이타적이기도 한 원칙이다.
환하기 짝이 없을 것, 부엌에서도 TV와 컴퓨터가 보이게 할 것, 집 한가운데 있을 것, 집에서 최고의 시설로 만들 것.
리더십의 조건이란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첫째, 체계를 세워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 복잡하게 보이는 일에도 체계가 없는 것은 없다.
다만 똑같은 집, 자기 색깔이 없는 집, 그 집만의 맛이 없는 집,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저 통상적인 방식으로 사는 집, 남들 사는대로 갖춰놓고 사는 것만이 목적인 집은 아니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