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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memo

scrap 26.

사랑스런 터프걸 2013. 12. 18. 14:08

서명 : 성공하는 남자 성공 못하는 남자
저자 : 마스이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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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 번화가 긴자에서 회원제 클럽을 운영하는 마담이랍니다.
일명 물장사를 하는 사람이죠.

아버지가 시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 세계를 많이 접했습니다.


얼마 전 몹시 취한 손님이 한분 계셨어요.
50대 사장님이셨는데 혼자 위스키를 주문해 마시더니 얼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더군요.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이지요. 얼마 후 1만엔짜리
지폐를 카운터에 올려 놓고는 피곤한 걸음으로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그 손님 회사가 도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남자는 가족 앞에서는 차마 흘릴 수 없었던 눈물을 이 곳에 와서
흘리고 간 것이지요.


저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많은 남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겪는
신뢰와 배신, 기쁨과 쓸쓸함, 성공과 좌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공한 남자들에게서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1. 성공하는 남자는 우선, 눈빛부터 다릅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외모가 아무리 잘 생겨도 잠시 뿐입니다.
무서움을 모르는 순수한 어린 아이의 마음, 정면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천진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녹슬지 않는 남자의 조건입니다.


2. 성공하는 남자들은 ‘아르마니’나 ‘베르사체’같은 고급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상황에 맞춰 옷을 입을 줄 아는 센스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남자가 술을 마시고 들뜬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귀여운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마셔 토한다든지, 잠들어 버리는
일은 인생에서 세 번 정도로 족하지 않을까요.
문 닫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잠이 들어 일어나려 하지 않는 손님에게는
어쩔 수 없이 허리띠에 업소 열쇠를 달아 놓고는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편한 단골 업소라도 일단 추태를 보였다면 다음날 저녁에라도
100엔짜리 아이스크림이든 애들 먹는 싸구려 과자든 하나 사들고
사과차 방문하는 게 좋습니다.


3. 성공하는 남자들은 긴자에서 술을 마시면서도 가정에 신경을 씁니다.

아내나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업소의
여성도 소중하게 여깁니다.
남자가 인생을 살다보면 다소의 풍파는 있게 마련입니다.
이혼해서 아내에게 위자료를 줘야 한다거나 더러는 정부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겨 양육비를 줘야 하는 일도 생기지요.
손에 넣은 사랑이건 아니었건 한때는 운명적이었을 겁니다.
한번 쯤 자신이 반했던 여성이라면 그 여성을 일생 동안 보살펴 줄
각오는 하기 바랍니다.


4. 부자와 성공하는 사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큰 병마에 시달렸다거나 근무하던 회사가 도산했다거나 큰 실수를
했다거나 경영하던 회사가 망한 적이 있는 등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련들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부자일수록 겸손하며 검소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 성공하는 남자들 중에는 남자들도 반할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몸을 불사를 정도로 열심히 일하게 만들고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그런 생각을 품게 만들지요.
부하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부하의 상처를
쓰다듬을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술자리에서까지 부하를 야단치는 사람이 있는데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술을 마실 때 상사는 부하직원을 일에서 해방시켜줄 줄 아는 마음
씀씀이가 필요합니다.



자, 그러면 이번엔 여성분들! 좋은 남자를 어떻게 골라야 하느냐고요?

중요한 것은 조급해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상형을 만났다고 해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
출발선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육체적인 접촉만으로 상대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자신이 진정 상대방 남성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단지 혼자 있는
외로움이 두려워서인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외로움과 사랑을
혼동하면 안됩니다.

쉽게 만질 수도 그렇다고 부술 수도 없는 늠름하고 꿋꿋한 여성에게는
‘도대체 이 여자는 어떤 사람이야?’ 라고 궁금해하며 그녀 주위로
남성들이 모여드는 법입니다.



1.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좋은날' 하고 큰 소리로 외쳐라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2.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라.
    거울 속의 사람도 나를 보고 웃는다.

3. 가슴을 펴고 당당히 걸어라.
    비실비실 걷지 말라.

4.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라.
    사촌이 잘되어야 나도 잘되게 마련이다.

5. 마음 밭에 사랑을 심어라.
    그것이 자라나서 행운의 꽃이 핀다.

6. 세상을 향해 축복하라.
    세상도 나를 향해 축복해준다.

7. 밝은 얼굴을 하라.
    얼굴 밝은 사람에게 밝은 운이 따라온다.

8. 힘들다고 고민하지 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다.

9.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라.

10. 그림자는 빛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어둠을 타박말고 몸을 돌려 태양을 보라.

11. 사람을 존중하라.

12. 끊임없이 배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13. 안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다.

14. 가정을 위해 기도 하라.
      가정은 희망의 발원지요 행복의 중심지다.

15. 장난으로도 남을 심판하지 말라.
      내가 오히려 심판 받는다.

16. 어떤 일이 있어도 기죽지 말라.
      기가 살아야 운도 산다.

17. 목에 힘주면 목이 굳는다.

18. 교만하지 말라.
      애써 얻은 행운 한 순간에 날아간다.

19. 밝고 힘찬 노래를 불러라.
      그것이 성공 행진곡 이다.

20.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

21. 푸른 꿈을 잃지 말라.
      푸른 꿈은 행운을 만드는 청사진이다.

22. 미운놈 떡 하나 더 줘라.

23. 말로 상처를 입히지 말라.
      칼로 입은 상처는 해복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간다.

24.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수있다.

25. 죽는 소리를 하지 말라.

26. 어두운 생각이 어둠을 만든다.

27. 마음을 활짝 열라.
      대문을 열면 도둑이 들어오고 마음을 열면 행운이 들어온다.

28. 집안청소만 말고 마음도 매일 청소하라.
      마음이 깨끗하면 어둠이 깃들지 못한다.

29. 원망 대신 모든 일에 감사하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새겨난다.

30. 욕을 먹어도 화내지 말라.
      그가 한 욕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31. 잠을 잘때 좋은 기억만 떠올려라.
      밤사이에 행운으로 바뀌어진다. 


조선시대 때 기상천외 할만한 일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아홉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한국사의 천재 이율곡★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율
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는 않을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율곡 선생은 9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 한 인물이다. 
우리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
견 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사상가이며 교육자였으며, 철학자였다. 
그의 가문은 또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
며 한국판 제갈공명, 한국정신사의 큰 산맥, 성리학의 대가,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이라고 했던가 그는 타고난 건강이 좋지 않아 49세의 나이로 세
상을 마감했다

★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보통 4-5개의 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도 천재라고 극찬을 한다.
그런데 한사람이 7개국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바로 조선조에 영의정을 지낸 범옹 신숙주가 주인공이다.
정치적인 얘기는 접어두고 학자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는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한국최초의 일본관련책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등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설총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 까지도 터득했다고 한다.
명문가답게, 일제하 독립투쟁의 주역들인 단재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이 그의 후손들이다

★조선왕조 실록에 3000번이상 등장하는 송시열★
송시열 그는 선조임금부터 숙종 임금때까지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은진이며 호는 우암[尤庵]이다. 그의 전성기는 효종때이며 효종임금의 오른팔이 되어 정계의 일인자가 되었다. 그는 문장과 서체에도 뛰어났으며 정계의 명망 때문에 교우관계가 넓었고 방대한 저술도 남겼다.
그러나 우암은 독선적이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교우관계가 끝까지 화합하지 못한경우가 많았는데 이점이 당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성리학으로 철저히 무장된 학자였으며 흙탕물같은 정치판에는 끼어들지 말아야했다.
그는 83세로 제주도 유배에서 서울로 압송되어오던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을때까지 당쟁과 파벌의 투쟁을 벌인 전형적인 외골수 선비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오는 사람은 오직 송시열 뿐이며 또 전국 42개 서원에 배향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역사적 비중을 가늠할수 있다.

★왕의 얼굴한번 보지도 않고 정승에 오른 윤증★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다.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 당쟁의 한 축이었으며 재야의 막후실력자 소론의 영수였다.
윤증은 왕의 얼굴한번 보지 않고 우의정 까지 올랐던 우리나라 역사상 단한명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는데 그가 받았던 관직을 보면 36세 때 내시교관부터 공조정랑, 사헌부 지평, 호조참의, 대사헌, 우찬성, 좌찬성, 83세 때 판돈녕부사까지 계속 관작이 승진되면서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어쨌든 그는 출사하지도 않은 채 재야에서 일정한 세력을 등에 업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한번도 조정에 나가지 않고 왕의 얼굴도 보지 않으며 정승이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천재 가문에 또하나의 천재(이율곡의 아우) 이우★
"왕대밭에 왕대난다"
조선왕조 천재가문인 이율곡, 신사임당 가문이 배출한 또하나의 천재 가 있다.
바로 이율곡의 동생 이우. 그는 조선조 통털어 시,서,화,금[詩,書,畵,琴]에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여 4절로 불려지는 유일한 인물이다.
천불여이물[天不與二物]이라하여 하늘은 인간에게 두가지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대개 용모가 뛰어나면 머리가 부족하고, 머리가 뛰어나면 행동이 부족하고, 행동이 뛰어나면 지성이 모자라고,...이렇듯 여러재능을 겸비하기란 천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그림은 물론 시와 글 가야금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어머니의 화풍을 따라 초충[草蟲], 사군자 등을 잘 그렸으며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면 닭이 벌레인줄알고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아들 경절도 書,畵,琴에 뛰어난 삼절이었으며 신사임당의 삼절과 자신의 사절을 합치면 십절이 탄생되어 불세출의 기록을 역사속에 남겼다.
신사임당 家의 천재적 재능은 오늘날에도 살아숨쉬며 역사속의 거울이 되고 있다

★과거급제 60년만에 판서가 된 윤경★
인간은 불평등 한 것일까? 앞장의 정태화 같은 인물은 판서란 직책은 모두거치며 정승도 여러차례 거쳤는데, 누구는 급제 60년만에 겨우 판서에 올랐으니 말이다.
관료들의 경노당 최고령 기록을 갖고 있는 윤경은 30세에 급제하여 90세가 되는 60년만에 공조판서가 되는 불가사이하고 유일무이한 진기록을 갖고있다.
90이 될 때까지 인내하고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며 버텨낸 그의 집념과 불굴의 의지는 인간승리의 전형을 보여준 예라 하겠다.
마음이 너그럽고 욕심이 없는 것이 장수의 비결일까? 윤경은 98세까지 살다 간 장수인물이며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83세에 과거급제한 인간승리 박문규★
조선왕조 최고령 과거 급제자 박문규.
83세의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당당하게 최고령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한 박문규는 최고령 급제라는 새로운 기록을 역사에 남기고 떠난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도대체 학문의 끝은 어디이며 인간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나이에 자기도전에 성공하여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조선조에 있어서 과거란 무엇이길래 80이 넘은 나이에도 과거시험에 집착하는가?
그답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는 문신중심의 사회이고 문관에게 가문의 영광과 명예가 주어지며 부의 축적은 물론 부인의 축첩 등 수많은 특전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시험은 양반들의 유일한 출세길이었으며 가문의 흥망성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83세의 박문규는 과거시험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약 50여년을 시험에 매달렸으니 아마도 수 십 번은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1887년에 급제하여 고종의 특명으로 병조참의를 제수 받았으나 지상과제의 한을 풀어서인지 그 이듬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76세에 처음 장가 들고 99세까지 장수한 홍유손★
조선시대 하면 사내아이는 보통 10세를 넘으면 장가를 가게 되는데, 무려 76세의 죽을 나이에 첫 장가를 가고 아이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인공은 홍유손.그는 소위 죽림칠현으로 속세를 떠난 청담파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76세에 장가를 들어 아들 지성을 낳고 99세까지 살다간 조선시대 기인중의 한명이다. 같은 죽림칠현이자 생육신이었던 남효온은 그를 평해 [글은 칠원같고 시는 산곡을 누빈다] 고 하였다.
그는 거의 기인에 가까웠으며 특히 세조가 정권을 잡은 후 김시습, 남효온, 등과 어울리면서  세상을 비관하고 냉소로 일관하면서 풍자적인 인생을 살았다.
99세의 천수를 누린 그는 역사 인물사전에 나오는 최장수 인물이 되고 있다.

★섹스심벌 어우동은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다★
조선조 최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 어우동,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우동은 성종 때의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의 딸로 태어났으며 이름도 책마다 다른데 , [용재총화]에는 어우동, [실록]에는 어을우동, 이라고 되어있다.
어우동의 시댁은 세종대왕의 바로 위 형님인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다. 어우동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는 즉시 그 자리에서 본능적인 행동을 하였고, 특히 근친 상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몸에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기를 강요하였다.
한국의 3공화국때 정인숙 LIST처럼 그는 어우동 LIST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그녀로 인해 신세를 망친 관리들이 많았으며 나중에는 도승지 김계창의 줄기찬 탄핵으로 의금부의 문초 끝에 삶의 여정을 끝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조선왕조 최연소 급제자[만14세] 이건창★
조선시대 20세 미만 급제자는 30명이며 그중 최연소 급제자는 1866년[고종30년] 강화도별시문과에서 6명중 5등으로 뽑힌 만14세의 이건창[전주이씨]이다.
이건창은 판서 이시원의 손자로 강화출생이며 5세에 문장을 구사할만큼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조정에서도 너무일찍 급제하였다하여 4년뒤인 만18세가 되어서야 홍문관직의 벼슬을 주었다.
이건창의 벼슬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천성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으로 암행어사때는 충청감사 조병식의 비리를 낱낱이 들쳐내다가 도리어 모함을 받고 1년여의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후 그는 저술에 몰두하여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기술한 [당의통략]을 저술하는 등 조선말기의 대문장가로 손색이 없었다.



(1) 아주 먼 옛날 중국 진나라시대에, 어느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사람들의 성씨는 신체의 일부를 따르는 전통 이있었다.
대대로 귀가 큰 집안은 이(李)씨, 화술에 능통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집안은 구씨 하는 식이였다.
그곳에 수(手)씨 집안이 있었는데,그 집안은 대대로 손재주가 뛰어난 집안이었다.
이 "수"씨 집안에는 매우 뛰어난 말 한 필이 있었는데, 이 역시 수씨집안의 손재주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었다.
어느날 도적들과의 전쟁에 수씨집안의 큰아들이 이 말을 타고나가 큰공을 세워 진시황으로부터 벼슬을 받았다.
이것을 본 앞집의 족(足)씨 집안에서는 "손재주나 우리집안의 달리기를 잘하는 발재주나 비슷하니 우리도 말을 한 필 길러봄이 어떨가...." 하여 말한필을 길들이기 시작했다.한 달후, 도적들이 보복을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이를 본 족씨는 아들에게 "어서 빨리 수씨 집안보다 먼저 우리 말을 타고 나가거라." 일렀고, 족씨 집안의 장자는 말을 타고 나가다 대문의 윗부분에 머리를 부딪혀 어이없게도 죽고말았다.
이를 본 족씨는 통곡하며
"내가 진작 분수에 맞는 행동을 했더라면 오늘의 이 변을 막을 수 있었을것을..."하며 큰 아들의 주검을 붇잡고 통곡하였다.
이때부터 세인들은 분수에 맞지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足家之馬(족가지마)"라고 말하곤 한다.

足家之馬(족가지마): 자기의 주제도 모르고 남의일에 참견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

足家苦人內(족가고인내): 옛날 족싸가문의 큰아들이 집안에서 죽음으로 인해서 비롯된 말. (족씨가문이 집안의 사람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2)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조씨성을 가진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씨에게는 만삭인 부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 부인이 말하길 "여보! 어제 밤 꿈에 말한마리가 온천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는 꿈을 꾸지 않았겠어요. 아마도 우리가 말처럼 활달하고 기운센 아들을 얻게
될 태몽인 것 같아요." 라고 하였다.
조씨는 심히 기뻐하여 "그것 참 좋은 태몽이구려 어서 빨리 우리 아들을 보았으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사흘 뒤 조씨부인은 매우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하였고, 조씨는 태몽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溫馬(온마)"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온마가 스무 살이 되었다. 조온마는 조씨부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마을의 처녀란 처녀는 죄다 욕보이는 난봉꾼이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결국 조온마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조온마는 판관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판관이 말하길 "조온마는 색기로 인하여 마을을 어지럽혔다(趙溫馬亂色期;조온마난색
기). 따라서 거세를 당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결국 조온마는 거세를 당하였고, 후일 사람들은 경거망동히 행동하는 사람에게 조온마의 일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조온마난색기"라고 충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온마난색기(趙溫馬亂色期):경거망동한 사람에게 충고할 때쓰는 말. 이 고사성어는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경계하라"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3)고대 중국의 당나라 때 일이다.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 날 길을 가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농부가 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자꾸만 가혹한 채찍질을 가하는 광경을 본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나그네는 말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농부에게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왜 자꾸만 채찍질을 가하는
가?"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자고로 말이란 가혹하게 부려야 다른 생각을 먹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가 없어 이내 자리를 뜬 나그네는 열심히 일하는 말이 불쌍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간 탄식과 함께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한다.
" 아! 施罰勞馬 (시벌로마) "
훗날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어져 주마가편 (走馬加鞭)과 뉘앙스는 약간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한다.

* 施罰勞馬 (시벌로마) :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못잡아먹어 안달인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
* 용법 : 남 잘돼는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일부 몰상식한 사람의 뒤에서서 들릴락말락하게 읊어 주면 효과적일 것이다

(4)중국 원나라때의 일이다...
어떤 마을에 한 어부가 살았는데 그는 너무나도 착하고 어질어서 정말 법 없이도 살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항상 그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 새로운 원님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 원님은 부임한 뒤 그 마을에 한 착한 어부가 덕망이 높고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저 어부를 제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중 원님은 묘안을 하나 짜내게 되었다.
그 어부의 집앞에 몰래 귀한 물건을 가져다 놓고 그 어부가 그 물건을 가져 가면 누명을 씌워 그 어부를 죽일 계획을 세운것이다...
첫번째로 그는 그 어부의 집 앞에 쌀 한 가마니를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그 어부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쌀 가마니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님은 두번째로 최고급 비단을 어부의 집앞에 가져다 놓았
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화가난 원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커다란 금송아지 한 마리를 집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어부에게는 금송아지 마저 소용이 없었다...어부가 손끝 하나대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어부의 행동에 화가난 원님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탄식을 했다...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착한 어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구나. 그 뒤로 어부에게 감명받은 원님은 그 어부를 자신의 옆에 등용해 덕으로써 마을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자신이 뜻한대로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약간 화가 난 어조로 강하게 발음한다...
* 이 고사성어는 그 때 당시 중국 전역에 퍼졌고, 급기야는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으로 까지 전해졌으며...오늘날에는 미국,영국 등지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고 한다..

(5) .. 옛날 한나라 때의 일이다...
어느 연못에 예쁜 잉어가 한마리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디서 들어 왔는지 그 연못에 큰 메기 한 마리가 침입하였고 그 메기는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 먹으려고 했다.
잉어는 연못의 이곳 저곳으로 메기를 피해 헤엄을 쳤으나 역부족이었고 도망갈곳이 없어진 잉어는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잉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오르게 되고,지느러미를 다리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메기가 못 쫓아 오는걸 알게 될 때까지 잉어가 뛰어간 거리는 약 구리 정도...였을까...암튼 십리가 좀 안 되는 거리였다...
그때 잉어가 뛰는 걸 보기 시작한 한 농부가 잉어의 뒤를 따랐고 잉어가 멈추었을때,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다...
`어주구리(漁走九里)`... 그리고는 힘들어 지친 그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이다...

* 어주구리(漁走九里)....능력도 안 되는 이가 센척하거나 능력밖의 일을 하려고 할때...주위의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 이 고사성어는 말 할 때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로 약간 톤을 높여 말하면 아주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