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taBase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전 로마 황제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스토아 학파 철학자이다. 그는 오현제 라고 알려진 통치자들 중 마지막 인물이자, 두 번째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 이전 로마 제국의 상대적 평화와 안정성의 시기인 팍스 로마나 의 마지막 황제였다가정교사에게서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험담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배웠다. 비판을 들어도 노여워하지 말며 오만하지 않으면서 고결한 태도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과 근거 없는 말을 하는 자들에 대한 인내심을 보여주는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 플라톤 학파인 알렉산더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 바쁘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편지에 쓰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또한 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사회와 가족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우리는 누구나 돈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도 부자가 되어 은퇴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종종 현재의 안락함에 취해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고, 결정을 내리지 못해 초조할 때도 있을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 답답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돈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은 5억 원이다.5억 원 정도의 돈을 벌어 본 사람은, 그 돈이 주는 편안함에 취하지만 않는다면 10억 원도 벌 수 있고 그 이상도 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르바이트의 핵심은 지식에 있다. 지식을 가진 사람은 미래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도 반드시 지배한다. 경제적 독립을 위한 돈 모으기는 처음 1억원 모으기와 그 후 5억원 모으기에 언제 성공하는지가 관건이다. 주식 투..
토니 라빈스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변화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개인을 변화시키고 전문가와 프로들의 심리를 치유하며, 대기업과 팀의 조직을 혁신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왔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는 수많은 대중강연과 세미나를 통해 개인들의 삶과 조직의 수준을 혁신하는 데 헌신해 옴으로써 강렬한 족적을 남겼다.1997년, 국제상공회의소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10인"에 선정되어,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은 그는, 인간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관계 없이 즉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들의 내적 능력을 계발해 보여주었다. 그것은 라빈스 자신의 인생 자체가, 무수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성공적인 삶의 본보기였기 때문이다.그는 천만 부 이상이 팔린 초베..
원택스님은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친구를 따라 찾아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일만 번의 절을 하고서야 겨우 얻은 좌우명은 ‘속이지 마라’ 한마디. 그 후 다시 찾아간 성철스님에게 “니 고마 중 되라”는 한마디를 듣고 1972년 출가했다. 혹독한 행자생활을 거쳐 계를 받고 성철스님을 곁에서 22년, 또 스님을 떠나보내고 난 후 23여 년, 이렇게 45년 동안 큰스님을 시봉하며 살고 있다. 원택스님은 “마음을 다해 시봉한다 했건만 돌아보니 큰스님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는 말로 스승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원택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
최승욱은 증권 커뮤니티 기업인 상TV(주) 대표로 재직 중이다. 상TV(주)는 동영상 증권정보 사이트(www.sangtv.co.kr)와 실시간 종목 TV(동영상 라이브방송)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시스템 개발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Bestez 보물상자’ ‘상HTS’ ‘MW리버스’ ‘쪽집게시스템’ 등 다수의 프리미엄 증권 시스템을 개발?운영하고 있는데 그가 만든 HTS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1년간 자체 보유한 여의도 증권아카데미에서 배출한 제자가 5,500여 명이 넘으며, 대신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10여 개 증권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전 트레이딩 교육을 맡아오면서 증권계의 ‘영원한 사부’로 통한다. 방송 부문에서는 증권 프로그램의 효시로 꼽히는 「최승욱의 세력주 차..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_ E. P. 톰슨, 에릭 홉스봄 등 유력한 사가들에 의해 ‘독창적인 사회주의자’나 ‘혁명적 유토피아론자’ 등으로 평가받은 영국의 사상가. 생전에 영국 왕실의 계관시인으로 추대될 만큼 시인으로 유명했으며, 사후에는 현대 디자인의 선구자이자 현대 기능주의 건축의 아버지로 재평가되며 디자이너로도 유명해졌다. ‘생활사회주의’로 알려진 모리스의 사회주의는 ‘일상 노동과 삶의 예술화, 자연화’로 요약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건축, 공예, 문학 등 여러 방면에 걸친 그의 작품 곳곳에서 표현됐으며, 현대의 아나키즘과 생태주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나에게 예술이란 인간의 정신 노동과 육체노동으로 생겨나는 아름다움이며 인간이 대지 위에서 환경 전체와 더불..
Jean Grenier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는 1898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브르타뉴에서 성장했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22년에 철학 교수 자격증을 얻은 뒤 아비뇽, 알제, 나폴리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누벨르뷔프랑세즈(NRF)》 등에 기고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1930년 다시 알제의 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부임한 그르니에는 그곳에서 졸업반 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만났다. 1933년에 그르니에가 발표한 에세이집 『섬』을 읽으며 스무 살의 카뮈는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고, 몇 년 뒤 출간된 자신의 첫 소설 『안과 겉』(1937)을 스승에게 헌정했다. 그르니에는 1936년에 1..
저자 이백용은 경기고, 서울대 전기과 졸업. 미국 UCLA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석사학위 취득. 외로운 유학시절, 인생의 동반자를 찾고자 결혼을 결심, 태평양을 멀다 않고 서울을 드나들며 단지 옆에만 있어달라는 부담 없는(?) 제안으로 아내를 붙잡았다. 이후 천방지축(?) 아내의 성격개조를 위해 단행한 일생일대의 프로젝트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상심했지만, MBTI를 통해 백조(?)로 재탄생한 아내와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두산컴퓨터 LA지사장을 지낸 후, 88년부터 바이텍씨스템을 창업하여 각종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으며, CBMC(기독실업인회) 대학 팀장으로서 실업인과 전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업과 가정을 회복시키는 일을 주도하고 있다.사람이 자기대로 살 수 없을..
126.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의 폭이 작고 시선이 협소하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거다. 생각의 폭과 깊이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확장되고 시야가 넓어지니 와, 감사가 절로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행복을 느끼는게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진정한 행복은 강도가 아닌 횟수136. 나라고 뭐 매일의 일상이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들로 가득 찰 것 같냐? 어림도 없다. 너나 나나 뭐가 다르겠어. 그 몸이 그 몸이지. 하지만 나는 쓰는 사람이다라는 개념을 세포 속에 박아두고, 별거 없는 일상도 달리 보려 노력한다.평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대화를 하다가도 영감이 떠오르고, 키워드가 딱 꽂히면 메모지..
류지선IT 회사에서 세계를 무대로 해외 영업을 하던 중 우연히 아프리카를 접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6개국에 성공적으로 시장 개척을 하고 그중 가장 다이내믹한 나이지리아에 매력을 느껴 2012년에 이주했다. 현지 한국 기업에 종사하다가 주얼리 브랜드 ‘아프로마’로 창업하는 한편 코트라, 주나이지리아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등의 정부 사업 코디네이터이자 한인회 사무국장으로서 7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후 국제 개발 협력에 뜻을 품고 2019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관세행정, 디지털전환 관련 국제 개발 연구 및 컨설팅을 하는 한편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석사를 수료하고 현재 숭실대학원에서 IT 정책 박사 과정 중에 있다. 6년째 ‘나아지리라 나이지리아’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 경제 일간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