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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800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사랑스런 터프걸 2009. 2. 7. 00:10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고미숙 (그린비,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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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을 살표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 - 이옥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말하자면 글이란 읽는 이들을 촉발하는 공명통이어야 한다. 찬탄이든 증오든 공명을 야기하지 못하는 글은 죽은 것이다.

그러리 일행들이 그에게 '구경벽'이 심하다고 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요술이 기본적으로 눈속임이라고 간주했다. 자신의 눈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거기에 속아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나면서부터 신성하여 능가경 등 1만권을 능히 외울 수 있었다. 원세조가 그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맞아오니 과연 지혜가 있고 명랑한데다, 전신이 향기롭고 걸음걸이는 천신같으며, 목소리는 율려에 맞는지라 대보법왕이란 호를 하사했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이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배운 것을 때로 복습하면 어찌 즐겁지 않겠소.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 남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소이까.

이런 식의 유영이 가능하려면 자신을 아낌없이 던질 수 있는 당당함이 요구된다. 자의식 혹은 위선이나 편협함이 조금이라도 작용하는 한, 이런 식의 태도는 불가능하다.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자아와 외부가 부딪히는 경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웃음이야말로 그 꽃들 가운데 하나다.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또한 여의주를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교만하여 저 말동을 비웃지 않는다. - 이덕무

..흰 듯도 하고, 검은 듯도 한 것이 마치 큰 수정거울과 같아서 오색이 찬란할 분더러 또 한가지 빛인 듯 기운인 듯 그 무엇이 있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저 뭐라 형용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넘어갈 상황에서 연암은 늘 그것이 무엇과 무엇 사이에 있음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만 있다면 문장의 도는 그것으로 지극하다.